‘다수 의견’ 확보보다
정당한 주장이 앞서
여론(輿論)의 본래 의미
되새겨야 할 때
필자를 포함해 요즈음 대다수의 집에서 가족의 전체 의견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여론(女論)이다. 사방에서 자기만 잘낫다고 아우성치는 사회에서는 여론(余論, 나 여, 말한 론)보다 여론(汝論 너 여, 말할 론)을 잘 들어줘야 세상 살기가 편하다. 또한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별 볼일 없는 여론(餘論 끄트머리 여, 말할 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다중의 여론(與論 무리 여, 말할 론)을 생각 없이 따르다가는 인기영합주의라고 비난받는다.

그렇다면 선거 기간 중에 매일같이 보다시피 하는 여론조사의 여론은 女論, 余論, 汝論, 餘論, 與論 중에서 어느 것일까? 위에서 예로 든 여론은 한자의 뜻을 조합해 만든 단어로 輿論(수레 여, 말할 론)이 올바른 한자어다. 흔히 사람들은 여론을 與論이라고 잘못 쓰는데 이는 영어로 의회에서 다수당을 뜻하는 ‘Major Party’가 여당(與黨)으로 번역되면서 같은 맥락에서 ‘다수의 의견’이라는 뜻으로 유추해 생긴 오해다.

여론(輿論)의 수레 여(輿)자는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 輿자는 형성문자로 뜻을 가지고 있는 수레 차(車)와 음을 나타내는 마주 들 여(킢)자가 합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여’자에는 있다(居)라는 뜻도 포함된다. 따라서 수레 여(輿)자의 가장 으뜸 뜻은 ‘수레'이고 한자 옥편에서 찾을 때에도 수레 차(車)부에서 찾아야 한다. 이 글자의 뜻을 보면 임금이 타고 다니던 가마나 수레(輿駕), 온 세상을 의미하는 땅 또는 천지(大東輿地), 무리(衆), 많다(輿望), 밑바닥(車低) 등 다양하다. 따라서 여론을 글자 뜻대로 풀이해보면 “임금이나 치자(治者)가 수레 안에서 온 천지를 돌아다니며 밑바닥 무리(百姓)들로부터 듣는 많은 의견”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뜻 중에서 ‘많은 무리의 의견’킢이라는 뜻만 잘못 전달되어 輿論을 단지 다수의 의견(衆論)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세상에 널려 있는 의견”이라는 세론(世論)이 더 정확한 여론(輿論)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끼리 자신의 의견이 국민 여론을 대표한다고 구미에 맞는 여론조사 결과만 취사선택해 내보이는 것은 무조건 ‘많은 무리의 의견’을 확보해야만 자신의 주장에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연유한 것이다. ‘세상 백성들의 많은 의견’이 여론의 본래의 뜻임을 안다면 자신의 주장이 대세가 아니더라도 그다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여론조사에서 불리하게 나왔다고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고,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려고 온갖 지혜를 짤 필요도 없는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견해가 2%가 됐던 10%가 됐던  다양하고 수많은 여러 의견 중에서 여론조사에 의해 나타났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자신의 견해가 왜 다수의 의견이 되지 못했을까에 대한 해답을 여론조사에서 찾지 말고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견해가 부당한 것이어서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정당하지만 홍보나 선전이 잘못되어서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여론조사가 엉터리라서 그러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조사가 엉터리일 확률이나 유리한 조사가 틀릴 가능성은 서로 비슷하다.

강남준 교수
사회대·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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