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경

비는 쉬이 그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우울은 비에 섞여 끈적하게 들러붙는다
비 오는 날이면 기억은 잘린 꼬리에서 시작되는데
소주처럼 쓰라리게 물기가 상처에 내려앉을 적이면
나는 또 어디 선창가에서 꼬리 하나가 곧은 몸을 세우고
힘없이 나를 부르는 것을 상상한다

맞춤법을 자꾸 틀리는 아이처럼 정신없이
물을 핥을 때면, 꼬리가 잘린 순간의 기억이
물에 비친 모습에 스쳐 발을 헛디디게 하는데
잡아줄 이는 없다 어미는
발갛게 잘린 상처를 그저 오래 입 안에 넣고
나를 내려다보아서 눈이 한 곳으로 몰린
기묘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어
주저앉는다 물은 바다보다 작아 때 묻은 털 사이로
옹알이를 시작하는데 그러면 나는 내 어미가 그랬듯
흔들리는 물들을 그저 바라보고 있다

날들은 꿈틀거리며 바삐 가버리고
배신의 기억도 없다 시간은 마냥 휘어
무딘 발톱 사이로 빨려 들어갈 뿐이다
어느 마을에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였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고작 역사란 것은
어느 먼 조상이 쓰레기 봉지를 뒤지다
종량제 봉투를 삼키고 죽었다는 식의 허무한
폐허로만 남았다

여기 항구는 낮아 인간의 시간을 삼키고 있다
녹슬어 버려진 비린 계절의 향취가 빈속을 긁는다
가끔 항구를 끼적이다 가는 사람도 있고
담배를 태우는 사람도 있지만
상자 속에선 그저 꽃이 길가에 피었다 지듯
점점이 흙빛도 되지 못한 무른 색채들이 다가왔다
또 살빛을 떨구고 돌아가는 것뿐이다

야옹은 슬픈 기호이다
말을 배울 때 우리는 입을 막았어야 했다
시간의 종착역인 이곳으로 내몰리기 전에 모닥불 옆에서
시간을 태우지 말았어야 했다
눈은 둥글고 성글어진 눈매처럼 닳아버린
야옹이란 우스꽝스런 생존은 언제나 분노한 족속도
고독하게 만들어버린다

상상은 머릿속에서 그저 녹는 꿈이며
털을 핥을 때마다 묻어나오는 부스러진 털처럼
물결에 발을 담가 털어내는 유희에 불과하다
다만 한 올의 생각을 비린 물속에 헹궈내길 저어하는 것은
물에 비친 슬픈 눈이 언제나 앞발을 담구고 있는
나를 닳은 목소리로 부르기 때문이다

비는 쉬이 그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빗방울은 나를 닮았다
까슬까슬한 소리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골판지의 눅눅한 온기에 부비는 순간 나는
이곳에 처음 온 그날처럼
잘린 꼬리가
거칠게 젖어버린 붉은 혀가
때투성이가 되어 바스러질 것 같은 털이
내가
내 위에 올라앉아서
겨울비로 둥글게 낙하하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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