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경 정치학과․05

세 번의 가을을 보내는 동안 많은 이들이 떠났습니다. 몸이 떠난 사람들도 있었고, 가까이 있어도 서먹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계절에 따라 떠나고, 마주치는 공간에서 가끔 홀로 시간을 들여다보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볼 때마다 마치 검은 연필자국에 닳아, 통 속에 차곡차곡 모아둔 지우개를 보는 듯한 기분이 무겁게 다가오곤 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길을 혼자 걸었습니다. 그런 밤이면 생각과 걸음으로도 지우지 못한 시간의 흔적들은 둔탁하게 울리는 꿈이, 알람을 끈 무책임한 잠이 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는 동안 태어나는 글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쓸쓸한 시간을 밖에 내어 놓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두려움을 품기도 했습니다. 쓸쓸한 시간 속에 쓸쓸함만을 채워 넣다가는 쓸쓸함에 눌려 질식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길을 서성인 새벽이면 글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쓴 하루의 고백이긴 하였지만 글은, 낯선 길을 서성일 수 있게 하는 길벗이었고,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빈 시간도 설렘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낯선 서성임에도 설렐 수 있음은 황홀한 것이었고, 그래서, 조금은 쓸쓸하지만 그럼에도 한 편 한 편씩 마주치는 시들은 사랑스러웠습니다.

많이 서툴고 혼란한 시를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말없는 믿음 보내주시는 부모님, 사랑합니다. 편안한 위안이 되어주는 정치학과 학우들, 겨레반 학우들에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생각해보면, 주위의 많은 이들 덕분에 낯설고 힘든 시간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설렐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오늘의 이 기쁨을 간직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시간 속에 조용히 서서, 이제는 쓸쓸함을 넘은 위안을 바라보며 글들과 혹은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오늘 하루, 이 글을 읽으며 혼자 걷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설렘 돋아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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