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고 한나라당이 국회로 돌아오면 국회에서 곧 내년도 국방예산을 심의하게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군사비의 증대가 경제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지는 않는 것 같다. 미사일, 전투기, 탱크, 헬리콥터 등을 외국 무기상으로부터 구입하고 한창 공부하고 근무해야 할 청년들을 군대 막사에 잡아 두는 것이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엄청난 낭비라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군사비 증강과  미군의 남한주둔,
새로운 각도에서 고찰해야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경제를 분석하면서 군사비의 지출이 미국 경제가 장기 호황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좌파경제학자들이 있었다. 이 주장은 두 개의 현실 파악에 의거하고 있었다.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민간이 건설한 거대한 군수산업이 종전 이후에도 미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정부가 거대한 군사비를 계속 지출하지 않으면 군수산업이 침체하면서 그 군수산업과 전ㆍ후방 연쇄를 맺고 있는 다른 산업들도 타격을 입어 고용과 국내총생산이 침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논리에서 1950∼53년의 한국전쟁과 1954∼73년의 월남전쟁이 미국 경제의 침체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이론적으로 대규모 유효수요 또는 시장의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정부가 거대한 재정지출을 군사비에 사용하든 국민의 보건이나 교육이나 생활안정에 사용하든 전혀 차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군수재벌의 이익을 위해 군사비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미국 사회가 불합리한 사회이고 거대한 군수기업집단이 사회의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가리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지금 우리는 미국 정부가 자기의 필요에 따라 주한미군을 감축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만약 주한미군이 줄어들면 우리는 군사비를 증강시켜야 할 것인가? 사실 주한미군은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해 여기에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가 미국의 국가이익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면 주한미군을 감축하면서 해외의 공군력이나 해군력으로 이곳을 감시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낭비해야 한다는 점이 우리의 딜레마다. 북한과 화해 협력하면서 평화체제를 유지한다면 남북한 모두는 엄청난 규모의 자원을 국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북한이 군사비의 지출과 청년의 군대 동원으로 경제가 거의 마비상태에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을 주된 적으로 삼아 자주국방을 위해 막대한 인적ㆍ물적 자원을 낭비하는 프로젝트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 시기에도 그랬고 노무현 대통령도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와 젊은 세대가 뜻을 모아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관계를 하루 빨리 허물어뜨리고 새로운 밝은 세상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남북화해는 우리의 머리를 억눌러온 ‘빨갱이에 대한 공포’를 제거함으로써 더욱 자유롭고 창조적인 정치적ㆍ문화적ㆍ학문적 활동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또한 지금의 청년들은 옛날의 군사독재시대의 폭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군사비, 군사문화, 군대생활, 남북적대 등을 자유롭게 비판하면서 양심적인 병역 거부를 외치고 있다. 더욱이 이라크 파병문제를 계기로 침략전쟁이나 전쟁의 인적ㆍ정신적ㆍ육체적 피해에 관한 논쟁이 광범히 퍼지고 있기 때문에, 이 기회에 우리는 국방이나 군사비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고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국군인의 남한 주둔이 지니는 의미도 새롭게 조명해야 할 것이다.

 

김수행 사회대 교수ㆍ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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