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일 국어국문학과․04

꼭 1년 정도가 된 것 같다. 끝없는 자괴감의 터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써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은 지. 늘 불어오던 바람에 낚싯대를 드리운 채 쭈그려 기다려도 보았고, 엉성한 그물을 뿌리며 허우적대던 때도 있었다. 한 없이 뜨거워 노트를 달구었던 적도 있었고, 바닥에 얼굴을 묻고 숨어버리고 싶을 때 또한 많았다. ‘소통’이라는 명분으로 시작했던 글쓰기는 어느새 ‘삶’이라는 영역으로 기어 넘어갔으며, 그 사이 겪은 수많은 상처와 모멸감, 부끄러움 따위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바람은 세차게 불다가, 그치기도 하고, 폭풍이 되기도 했으며, 그때마다 나는 휘청거리다, 뜨거워지다, 부끄러워지곤 했다.

그리고 지금, ‘대학문학상’이라는 꼬리표 하나를 달게 되었다. 나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 되길 바라는 나로선, 그 꼬리표가 우선 반갑다. 마침 아무것도 쓸 수 없고 읽지 못했던 때라,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다시 수상작을 읽어보니, 여간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본래 쓸데없는 겸손은 떨지 않는 성격이라 날름 받아먹을 만도 하지만, 쉽지가 않다. 그리고 사실 더 두려운 건, 언제나 걱정하는, 너무 편안해져버리는 것, 그것이다. 그게 두려워 지금 이렇게 의뭉을 떨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꼬리표다.

상투적이지만, 초심을 잃지 않아야겠다. 한 선배가 내 글을 보며 늘 말해주는, 그 뜨거움. 가끔은 서툴고 둔탁하게 삐져나오는, 가끔은 어눌한, 그 뜨거움. 그것을 놓아 버릴 때, 난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만 같다. 한 시인이 말했다.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 예민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못하고, 편안해지면 응시하지 못하고, 뜨겁지 않으면 꿈을 꿀 수 없어진다. 좀 더 예민하고, 불편하고, 뜨겁게. 작위적인 헐떡임이 아니라, 절실한 목소리가 될 수 있도록 놓아 버리지 말아야겠다.

살기 위해, 꿈꾼다. 잊지 말자.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꾸자. 그럼으로써, 존재하자.

배고픈 가을의 꿈을 꾸는 모든 외로운 이들과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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