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주

지금 부인들은 비록 마지못해 시속을 따른다 하더라도 사치를 숭상해서는 안 된다. 부귀한 집에서는 머리치장에 드는 돈이 무려 7~8만에 이른다. 다리1)를 널찍하게 서리고 비스듬히 빙빙 돌려서 마치 말이 떨어지는 형상을 만들고 거기다가 웅황판(雄黃版)․법랑잠(法琅簪)․진주수(眞珠?)로 꾸며서 그 무게를 거의 지탱할 수 없게 한다. 그런데도 그 가장은 그것을 금하지 않으므로 부녀들은 더욱 사치스럽게하여 행여 더 크게 하지 못할까 염려한다.
요즘 어느 한 부자집 며느리가 나이 13세에 다리를 얼마나 높고 무겁게 하였던지, 시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자 갑자기 일어서다가 다리에 눌려서 목뼈가 부러졌다. 사치가 능히 사람을 죽였으니, 아, 슬프도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중
「사소절」에서 발췌
민족문화추진회 번역본

아버지는 머슴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침모였다. 나는 초노2)였다.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어머니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어머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노비였다. 어머니는 달을 두고 오동나무가 꼭 한 그루 갖고 싶다 했다. 어머니는 딸을 낳을 거라 했다.3)
“안채에 오동나무 있지? 그건 셋째 애기씨 태어나셨을 때 심은 거란다. 원래 딸을 낳으믄 나중에 시집갈 때 농 짜가라고 오동나무 심거든. 첫째 애기씨랑 둘째 애기씨도 시집가실 때 오동나무로 장롱 해 가시구. 안채에 밑동만 남은 오동나무가 그건데 마님께서 시집간 애기씨들 보고 싶으실 때마다 그 밑동을 손으로 문질러서 그게 반질반질 윤이 나는 거랜다. 아마 셋째 애기씨도 시집가실 때 오동나무로 장롱 하나 해 가지구 가시겠지. 그러구보 니 세월이 빠르네. 내가 마님 따라 교전비로 여기 올 때 마님 농이 어찌나 부럽든지 마님 몰래 손으로 쓸어 보구 그랬는데 어느새 마님도 애기씨들 시집 보내시구.”
“어머니 오동나무는요?”
“종년이 무슨 오동나무래니. 심을 데도 없는데. 행랑채 마당에다가 심을 수도 없구. 종년종놈이야 주인마님이 맺어주시면 그날로 물 한 그릇 떠다 놓고 혼례 치르는 건데 꽃가마 타고 시집가는 것도 아니고 농이 다 뭔 필요 있니. 근데 살림차릴 때 오동나무 장롱은 아니더래도 조그만 머릿장 하나라도 들고 오고 싶긴 하더라. 아이구, 종년이 허구헌날 바느질하느라 비단천 만지작거리니까 무슨 마나님이 된 것 마냥 바람이 든 거지 뭐냐.”
어머니는 바느질 할 때면 늘 나를 옆에다 앉혀 놓고 손으로는 바느질을 하고 입으로는 내게 두런두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곤 했다. 때로는 세책가에서 듣고 온 얘기를 내게 그대로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가끔 말끝에 “계집애가 좋은데. 사내애는 아무래도 무뚝뚝해서.”라고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태어날 내 여동생에게 오동나무를 한 그루 심어주고픈 거다.
나는 안채로 향했다. 연보랏빛 오동꽃이 한창이었다. 오동꽃이 피면 모내기철이어서 온 집안이 바빴다. 안채 마님도 바쁘셔서 안채에는 아무도 없는듯 했다. 나무가 높기는 했지만 가지를 딛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위를 살피고 얼른 나무 위로 올라가 오동꽃을 따서 내려오려는데 어느새 나무 아래 셋째 애기씨가 서 계셨다.
“도둑놈! 오동꽃 도둑놈!”
그냥 오동꽃 따지 말라고 하셔도 될 것을 ‘도둑놈’이라고 하시니 어딘지 발끈하는 감정이 나왔다.
“소인이 왜 도둑놈이에요!”
“남의 나무에 허락도 없이 올라가서 꽃을 꺾으면 도둑놈이지 뭐야!”
“겨우 꽃 한 송이 가지고 옹졸하고 치사하게…….”
이번에는 애기씨가 성이 나셔서 눈을 치뜨고 나를 올려다보셨다. 애기씨께서 발끈하신 걸 보니 통쾌해서 애기씨를 더 놀려먹기로 했다. 나는 나무 위에 있고 애기씨는 나무 아래 계시니 내가 깐죽댄다해도 애기씨께서 어쩌지 못 할 터였다.
“이 나무가 치사하고 옹졸하고 덕 없으신 애기씨 거였어요? 나무에 무슨 주인이에요? 비 내려주고 뿌리 뻗게 해 주는 하늘하고 땅이 주인이면 주인이지.”
“네 이놈! 당장 내려오지 못 해?”
“애기씨께서 올라오시든지요.”
더는 참을 수 없으셨는지 애기씨께서 나무를 타기 시작하셨다. 이번에는 내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혹시나 애기씨께서 발을 헛디뎌서 다치기라도 하시면 이건 오동꽃 꺾은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애기씨, 어서 내려가세요. 소인이 잘못했어요. 애기씨께서 다치시면 소인이 마님께 혼나요.”
내 말에 애기씨는 더 신이 나셔서 기어이 나무 위로 올라오셨다. 나는 나무 위에서 어쩌지도 못 하고 계속 주위만 살폈다. 애기씨께서 마당에서 놀기만 하셔도 회초리를 드시는 마님께서 애기씨께서 나무 위에 올라가셨단 걸 아시면 내가 어찌될 지는 뻔했다.
“범아, 나무 타는 거 생각보다 재밌어.”
내게 성질부리시던 것도 잊으셨는지 애기씨는 신이 나셨다. 어느새 내가 있는 곳까지 올라오신 애기씨의 입이 벌어졌다.
“와, 높다. 좀만 높으면 도성 안이 다 보일 것 같애. 한양이 이렇게 생겼구나.”
아니 뭐 동네 생긴 것 보고 그렇게 신기해하시냐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양반집 부녀자들은 바깥 출입도 맘대로 못 하고 늘 집 안에 있어야 했다. 나가도 해진 후에 나가거나 뚜껑 달린 가마를 타고 나가거나 해야 했다. 집안에서만 사는 게 답답할까봐 안채 마루를 높여서 담 밖이 보이게 했다고는 하지만 보여봤자 집 앞이 전부였다. 내게는 평범한 저잣거리 풍경도 애기씨에게는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시장을 가리키시며 이건 뭐야 저건 뭐야 계속 물어보셨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마님께서 안채로 들어오시는 게 보였다. 나는 얼른 낮은 나뭇가지에서 훌쩍 뛰어내렸지만 애기씨께서는 나를 따라 뛰어내리시다가 그만 무릎이 발보다 먼저 땅에 닿고 말았다. 애기씨께서는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셨지만 얼굴을 찡그리셨다.
“괜찮아. 별로 안 다쳤어. 어머니께는 말씀 안 드릴게.”
아까 치사하고 옹졸하다고 했던 것을 마음속으로 취소하면서 내 손안에서 거의 으깨진 오동꽃을 애기씨께 내밀었다.
“너 가져.”
“어머니한테 애기씨께서 주셨다고 할게요.”
“침모가 이게 갖고 싶댔어?”
“아니오, 그냥. 오동나무가 좋으시대요.”
“그럼 그거 침모 갖다 줘.”
다음 날 보니 애기씨의 무릎엔 보랏빛 피멍이 들어있었다. 산에서 나무 할 때 꺾어온 각시 붓꽃의 잎을 소꿉놀이하듯 돌로 짓찧어 무릎에 붙여 드리니까 애기씨께서 전날 나무 위에서의 그 얼굴로 나를 보셨다.
“이러면 진짜 낫는 거야?”
“그럼요. 이게 멍든 데 얼마나 좋다구요.”
“어떻게 이런 걸 다 알아? 너 되게 똑똑하구나.”
똑똑하다는 칭찬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았다. 나도 모르게 우쭐해졌다. 애기씨께서 비밀 얘기하듯 얼굴을 내 앞에 바짝 들이대셨다.
“너 글자 읽을 줄 알지? 시는 지을 줄 알아?”
“네?”
전혀 뜻밖의 질문이었다.
“종놈이 어떻게 글자를 알아요. 애기씨, 전 까막눈이에요.”
“똑똑한 놈이 글자는 왜 몰라? 나무도 잘 타고, 각시붓꽃도 알면서.”
“종놈은 글자를 배울 일도 없고, 배워도 써먹을 데가 없잖아요.”
“써먹을 일이 왜 없어? 배우면 다 생기지. 근데 천출이도 배우는 글자를 네가 안 배웠단 말야?”
“걔는 대감마님께서 가르쳐 주시잖아요.”
먼저 천출이 얘기를 하시고도 내가 그 얘기를 하는 건 싫으신 모양이었다. 애기씨께서는 얼굴을 잠깐 찌푸리셨다가 금방 펴시더니 눈을 반짝반짝 빛내시며 내게 다시 소곤거리셨다.
“너 나랑 글공부 놀이 하자. 내가 가르치고 너는 배우는 걸로.”
안 한다고 하면 애기씨께서 마님께 나무에 올라갔던 일을 고하시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하겠다고 했다. 애기씨께서는 갑자기 엄숙한 얼굴로 손수 물을 한 그릇 떠 오셔서는 날 데리고 동쪽 담으로 가셨다. 동쪽 담에서 까치발을 들면 사당 처마 아래쪽이 간신히 보였다. 거기엔 화려하게 채색된 나무로 만든 닭대가리가 붙어 있었다. 애기씨께서는 그 닭대가리에 대고 새벽마다 마님께서 정화수 떠 놓고 하시는 것처럼 절을 하셨다.
“너도 절 해. 글공부하기 전엔 여기서 절 하는 거야.”
“저 닭대가리가 뭐라고 절을 해요? 고사 때 돼지머리에다 절하는 것두 아니고.”
‘저런 무식한 놈’하는 표정이 애기씨 얼굴에 스쳐 지나갔다.
“닭 아니고 봉황이야, 봉황! 봉황이 자손들 벼슬자리 잘 나가게 해 준대서 사당에 봉황 조각하고 봉황 먹으라고 사당 뒷마당에 대숲도 만든 거야.”
사람 가지고 인형 놀이하나, 뭔 글공부 놀이 하나 하는데 별짓 다 한다 싶으면서도 애기씨 얼굴이 어떤 확신 같은 것으로 꽉 차 있어서 하는 수 없이 나도 애기씨를 따라 경건한 표정을 지으며 봉황대가리에 절을 했다.
애기씨께서는 방으로 나를 부르셨다. 방에는 필기구와 회초리 용도로 쓰일 나뭇가지까지 있었다. 애기씨께서는 대감마님마냥 양반다리를 하고 꼿꼿이 앉으셨다. 그동안 애기씨는 마님만 닮으셨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대감마님도 조금 닮으신 것 같았다.
“애기씨, 또 천출이네 다녀오셨어요?”
애기씨께서 회초리로 방바닥을 내리치셨다. 천출이는 분년이 아줌마 아들이었다. 뒷간에서 태어났대서 이름이 분년이었던 이 집 종 분년이 아줌마가 대감마님 눈에 들어 아들을 낳았고, 아들을 간절히 바라셨던 대감마님께선 그 애를 끔찍이 아끼셔서 분년이 아줌마를 첩으로 삼기까지 하셨다. 대 이을 아들을 낳으시려고 기자노리개4)까지 늘 차고 다니시는데도 딸만 셋 낳으신 안방마님께서 분년이 아줌마를 미워하신 건 당연했고, 머슴과 여종들도 자기네들과 같은 신세였던 분년이 아줌마가 첩이 되어 손에 물 안 묻히고 사는 걸 시기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형제와 헤어져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는 이 집에 교전비로 따라 와서는 마님과 큰 언니 막내 동생처럼 지내온 어머니도 마님이 미워하시는 천출이네를 같이 미워했다. 마님의 따님이신 애기씨도 자기 어머니가 미워하시는 분년이 아줌마를 미워했다. 툭 하면 천출이네에 가서 욕을 해대셨다. 아니, 애기씨께서 미워하시는 건 분년이 아줌마보다는 천출이였다. 대감마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이 있지만 천한 어미 출신이라고 해서 대감마님과 분년이 아줌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서 ‘천출이’로 불리는 그 애는 대감마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대감마님께 글을 배웠다. 위에 딸이 둘이니 셋째는 아들일 거란 기대를 깨고 딸로 태어나셔서 대감마님께 따뜻한 눈길 한 번 못 받고 안방마님께 글자를 떼신 애기씨는 대감마님께 글을 배우는 천출이를 대놓고 미워하셨다. 아마 오늘도 천출이는 사랑채에서 글을 배웠고 애기씨는 천출이네 가셔서 분풀이를 하셨을 것이다.
“분년아! 똥년아! 종년아!”
애기씨께서 천출이네 가셔서 집안사람들이 천출이네 욕하는 말들을 주워들으신 대로 외치시면 주눅이 잔뜩 든 분년이 아줌마가 주볏주볏 나와서 굽신거렸다. 대감마님께서 얼마전 새로 얻으신 기생첩에 밀려나서 더욱 움츠러든 분년이 아줌마를 흘겨보시던 애기씨는 “노리개첩년!”5)하고 쐐기를 박으셔서 분년이 아줌마를 움찔하게 하곤 하셨다. 그리고는 천출이를 불러내셔서 “천출 주제에!”하고 소리를 지르셨다. 나는 분년이 아줌마와 천출이의 기죽은 얼굴들이 불쌍해서 애기씨께서 천출이네한테 너무 심하시다고, 애기씨가 못되게 구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책을 펴다 놓고 대감마님 흉내를 내고 계시는 애기씨를 보니 애기씨도 어딘지 불쌍해 보였다.
“애기씨, 죄송해요.”
애기씨께서는 ‘회초리로 방바닥 친 걸로는 분이 풀릴 리 없지만 네가 죄송하다니까 참는 거다’하는 눈으로 날 노려보시다가 한마디 하셨다.
“제대로 공부 안 하면 종아리를 아프게 칠 거야. 알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애기씨께서는 붓을 들어 ㄱ,ㄴ,ㄷ 같은 언문 글자를 정성들여 쓰셨다. 먹물향이 방안에 퍼졌다. 고개 숙이고 글자를 쓰시는 애기씨 이마가 반듯했다. 흰종이에 먹물이 번지면서 ‘가’도 되고 ‘나’도 되었다. 그때 내 얼굴은 오동나무 위에서 한양시내를 보시던 애기씨 얼굴과 같았을까.
글공부‘놀이’래서 글공부 흉내만 낼 줄 알았는데 애기씨는 작정하시고 내게 언문글자를 가르치셨다. 내가 먹을 갈아오면 애기씨께서 종이에 글자를 쓰시고 나는 그 종이를 소중히 품에 넣어 가져가서 산에 나무하러 가서나 행랑채 마당에서나 틈틈이 몰래 꺼내 보면서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글자 연습을 했다. 가끔 너무 바빠서 그날 배운 글자를 그날 익히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 다음날이면 애기씨는 회초리로 내 종아리 치는 시늉을 하셨다. 글자를 조금 알면서부터는 종놈이 글자 배워봤자 쓸 데가 없다는 내 말을 기억하셨는지 애기씨께서는 넓은 오동잎에 “마당 쓸어”같은 글을 적어서 내게 건네는 식으로 심부름을 시키셨다. 어느 날인가는 “네 이름자는 쓸 줄 알아야지”하시며 “박 범”이란 글자를 써 주셨다. 처음 먹을 갈고 붓을 잡던 손의 느낌을, 땅바닥에 수십 번을 쓰고 지웠던 내 이름자를, 말소리가 아니라 글자만으로도 서로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순간을 나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 할 것 같다.
언문을 깨친 후부터는 언문으로 된 책을 무엇이든 갖다 읽었다. 애기씨 방에 언문책이라고는 계녀서와 소설밖에 없어서 나는 부녀자의 도리를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읽고 또 읽었다. 내가 부녀자의 도리에 관해 쓴 책들을 읽는 동안 애기씨는 「박씨부인전」이나 「홍계월전」6)같은 소설책을 읽으셨다. 어떤 때는 책을 밀어두시고 오동나무 위에 올라가 한양 시내를 한참 보시다가 내려오기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서 책을 읽느라 평소보다 조금 늦게 내려왔더니 집안이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듯 어수선했다. 안채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여자의 비명소리와 곤장으로 살을 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무서워서 어머니를 찾았더니 어머니는 문 밖에서 애기씨를 품에 안고 다독이고 있었다. 날 돌아보시는 애기씨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주인 눈치 살피고 사는 머슴 처지 덕에 눈치가 빠른 나는 그 눈물이 슬퍼서가 아니라 억울하고 분해서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어머니가 나를 끌어당겼지만 나는 애기씨와 어머니를 따라 행랑채로 가지 않고 그 무섭고 끔찍한 소리가 그칠 때까지 안채 담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얼마 후에 석정7)인 돌쇠아저씨가 한쪽 어깨에는 피투성이가 된 분년이 아줌마를, 한쪽 어깨에는 곤장을 메고 나왔다. 아저씨의 얼굴은 얼만큼은 슬프고, 얼만큼은 서럽고, 얼만큼은 피곤하고, 얼만큼은 힘들어 보였다. 분년이 아줌마는 기절했는지 축 늘어져 있었다. 애기씨께서 분년이 아줌마에게 “종년아! 노리개 첩년아!”하시던 게 떠올랐다. 아무리 첩이고, 아들을 낳았더라도 종년은 종년이었다. 맞아죽어도 아무 말 할 수 없는 종년. 나는 행랑채로 달려 갔다.
“분년이 아줌마 왜 맞았어요? 뭘 했길래 저렇게 많이 맞아요?”
“분년이만 맞았니? 나는 안 맞았어? 나는 안 맞았냐구!”
애기씨께서 서러우셨는지 그쳤던 울음을 다시 터뜨리시며 치마를 걷어 올리셨다. 종아리에 시뻘건 회초리 자국이 선명했다.
“애기씨하고 분년이 아줌마하고 무슨 일 있었어요?”
“난 잘못한 거 없어! 잘못은 천출이가 먼저 했어! 천출이가 지 에미 잡은 거란 말야!”
“범이야, 넌 입 다물어. 애기씨, 쇤네는 애기씨 잘못 없는 거 알아요. 우리 착하신 애기씨는 잘못 없어요. 다 천출이 잘못이지.”
언제나 안방마님 편인 어머니는 애기씨가 어머니 딸인 양 애기씨를 품에 안고 달랬다. 애기씨께서 기분을 푸시고 안채로 돌아가신 후에 어머니는 내게 낮에 일어났던 일을 애기했다. 애기씨는 낮에 또 천출이네 가셨댔다. 평소에는 애기씨께서 뭐라고 하셔도 고개만 푹 숙이고 있던 천출이가 오늘은 애기씨께 뭐라고 말대답을 했댔다. 뭐라고 했는지 그 말을 들으신 애기씨는 분을 못 이겨 천출이와 분년이 아줌마 빰을 후려치셨다. 그러고서는 곧바로 사랑채로 달려 들어가 대감마님께 뭐라고 아뢰었고 처음에 황당해 하시던 대감마님께서는 곧 노하셔서 애기씨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치셨다. 애기씨께서 물러가신 후 천출이가 사랑채로 불려갔다.
“천출이가 지 분수도 모르고 날뛰었나 보더라. 분년이가 저렇게 된 것도 애기씨께서 혼나신 것도 다 천출이 탓이지. 천출이가 지 에미 잡은 거라는 애기씨 말씀도 틀린 건 아닌 게지.”
대감마님께서는 천출이를 마당에 세워놓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태학의 식당에서 적서의 차별 없이 나이대로 앉게 함은 조정에서는 재주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허나 학교는 학교고 집안은 집안이다. 집안에는 집안의 법도가 있는 법이다.”8)
그렇잖아도 친척에서 양자를 들이지 않고 천출이에게 제사를 받들게 하시려는 대감마님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계시던 안방마님께서는 이 기회에 자식 잘못 가르쳐 집안에 분란을 일으킨 책임을 물어 분년이 아줌마를 그렇게 호되게 치셨던 것이다.
다음날 애기씨께 갔더니 애기씨는 “왜 왔어? 천출이한테나 가지.”라고 적힌 오동잎을 내밀고 등을 돌려 버리셨다. “소인은 애기씨 편이에요”라고 뒷면에 적어 돌려드렸더니 그제서야 날 마주보고 앉으셨다. 내게 내미신 손에는 마님의 비녀가 쥐어져 있었다.
“네가 내 편이면, 이 비녀로 몰래 사서삼경 책 좀 사 와.”
“마님 비녀를 왜 애기씨께서 가지고 계세요?”
“어머니께서 나 시집갈 때 주신다고 했던 거니까 내 거야.”
“그럼 시집가시기 전까진 애기씨 거 아니잖아요.”
“난 시집 안 가. 안 갈 거야. 그러니까 이 비녀는 지금 써도 돼. 너 혹시 우리 어머니한테 혼날까봐 이러는 거야? 그런 거면 걱정하지 마. 혼은 내가 날 테니까.”
“애기씨, 책을 보고 싶으시면 사랑에서 갖다 보시면 되잖아요.”
애기씨는 울컥 하셨는지 눈물을 글썽이시다가 가까스로 진정하시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는 계집애라고 글을 안 가르쳐 주신다잖아. 부인의 행실은 조용하고 온화하고 혁혁하게 착하게 하여 이름이 바깥 사람들에게 들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세속에서 이른바 재능있다는 부인은 반드시 밖의 일에 간여하는 폐단이 있다시면서.9)부인은 조석공궤와 접빈의 예절이면 족하다셔.10)”
그게 부녀자의 도리였다. 마님도 그렇게 사셨다. 계집이 글을 알면 팔자가 험하다고들 했고 글을 잘 하더라도 남이 알지 못 하게 해야 하는 게 미덕이라고들 했다.
“애기씨, 그런 책들은 사서 뭐 하시게요?”
“공맹의 글을 읽고, 나면 장수 되고 들면 정승 되어 옥궐에 조회하여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청운의 꿈을 펼치려 하는데.”
“부녀자는 밖의 일에 관해 말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나가셔서 벼슬까지 하시겠다고요? 애기씨, 부녀자의 벼슬은 지아비와 아들을 잘 보필하여 정부인 칭호를 받는 거예요.”
“홍계월은 장수가 되어 용맹을 떨쳤잖아.”
아마도 애기씨께서는 홍계월이 남편보다 뛰어났고, 시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장군 벼슬을 받고, 자신에게 예를 갖추지 않은 남편의 애첩의 목을 베어 버리고, 원수를 점점이 깎아 죽일 정도로 거침없이, 그러면서도 행복하게 살았다던 「홍계월전」의 내용에 끌리셨던 것 같다. 애기씨의 어머님은 기생첩도 마음껏 짓는 한시도 드러내고 짓지 못하셨고, 아들을 못 낳아서 시부모님께 주눅 든 며느리였고, 첩의 목을 베기는 커녕 투기하지 않는 부덕을 보이셔야만 했다. 분년이 아줌마를 그렇게 패실 때도 마님께서는 “자식 잘못 가르친 책임을 묻는다”고만 하셔야 했다.
“「홍계월전」은 소설이잖아요.”
“「홍길동전」도 처음엔 소설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천출이가 벼슬하겠다고 나대는 세상이 왔잖아.”
“그래서 천출이 뺨을 후려치신 거예요?”
“천출이가 그랬어. 대감마님께서,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께서 상소를 올리셨다고. ‘하늘이 인재를 탄생시킴에 있어서는 존비를 구별하지 않고, 백성의 충성을 바치기를 원함에 있어서는 귀천이 없다’11)고 하셨대. 그래서 내가 천출이는 학문도 하고 벼슬도 할 수 있다면서 나는 왜 안 되냐고 했더니 부인은 타고난 성품이 편협하고 바탕이 유약하니12) 성인이 될 수 없고 부인이 명철하면 나라를 망치니까 안 된대. 하늘이 존비는 구분치 않고 남녀는 구분하셨겠어? 사람의 날 때 성품이야 다 같은 거지.”
“하늘은 존비를 구분하고 남녀도 구분해요. 애기씨 말씀 대로면, 천민 성품이나 양반 성품이나 천성은 다 같은 거예요? 인재에 존비가 없다는 건 양반하고 양반 아들인 서얼까지만이지, 안 그럼 머슴도 인재가 될 수 있게요? 남녀도 마찬가지예요.”
애기씨는 잠깐 발끈하셨지만 내 말에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하셨는지 고개를 외로 틀고 날 보며 말씀하셨다.
“그래, 네 말대로 부인도, 머슴도 똑똑하면 벼슬할 수 있어.”
“날 때부터 다르게 태어났는데 똑똑하다고 그게 돼요?” 언젠가 어머니가 그러셨다. 셋째 애기씨께서 태어나시고 몇 달 뒤에 내가 어머니의 아들로 타어났을 때 어머니는 나와 셋째 애기씨를 맞바꾸고 싶었다고. 마님께서는 딸을 낳고서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하셨고, 어머니는 딸을 바랐으니까 맞바꿀 수 있다면 맞바꿔 드리고 싶었다고. 만약 그 때 정말로 내가 마님의 아들이 되었다면 나는 사서삼경을 공부하고 나중엔 과거급제도 하고, 그럴 수 있었을까.
비녀를 판 돈으로 책을 사서 나뭇단 속에 숨겨 와서 애기씨께 드리니 애기씨께서 심부름값이라며 책 한 권을 내게 미셨다. 산에 가서 펼쳐 보았더니 언문으로 한자의 소리와 뜻을 적은 천자문이었다. 한자는 대감마님께서 쓰시는 글자였다. 언문과는 또 다른 글자였다. ‘하늘 천’이라고 중얼거리며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한자를 써 보았다. 마치 금줄을 몰래 넘어가는 것처럼 무섭고 떨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림처럼 생긴 한자를 계속 땅바닥에 쓰고 지우고 다시 썼다. 갑자기 글공부하기 전엔 사당 지붕 밑의 닭, 아니 봉황 대가리에 절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나뭇단도 팽개치고 담 밑으로 갔더니 애기씨께서 마침 담 밑에 계시다가 날 보시자마자 “어딜 다녀오는 거야!”하고 소리를 치셨다. 산에 다녀오는 거 뻔히 아시면서 소리를 치시니 당황스러워서 멀거니 애기씨만 보고 있으려니까 애기씨께서 나더러 담 밑에 엎드리라 하셨다. 애기씨께서는 엎드린 내 등을 밟고 올라서셨다.
“설마 담 넘어서 사당에 들어가시게요?”
“책 숨겨놔야 해. 사당은 아버지만 아침저녁으로 다니시니까 그때만 피하면 책 숨겨 놓고 읽기 좋을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오동나무에 올라다니시는 것부터 마님 비녀 훔친 것까지 마님께 걸리면 호되게 혼날 일만 저지르셨는데 이번에는 사당에 들어가신단다.
“일어날게요. 사당엔 남자후손만 들어갈 수 있잖아요.”
“나도 이 집안 자손이야.”
애기씨는 기어이 담을 넘으셨다. 담 너머로 던져두신 책 보따리를 사당에 숨겨 두시고서 애기씨는 의기양양하게 미소 지어 보이셨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발받침용 돌을 담 밑에 갖다 두었다.
여름 내내 나는 산이나 행랑채에서 천자문을 익히고 애기씨는 사당에서 사서삼경을 독학하셨다. 그 무렵 사랑채에는 수시로 손님들이 드나드셨다. 애기씨께서는 낮에는 공부하시고 밤에는 마님께 자수며 요리를 배우셨다. 나는 낮에는 산에 가서 나무하고 공부하고 밤이면 바느질하는 어머니 곁에서 말동무를 하며 머릿속으로 낮에 공부한 한자를 떠올렸다.
“요새 애기씨 혼담이 오가는 것 같더라. 대감마님이랑 같은 당파에 계신 분 아드님이시라든데. 애기씨보다 몇 살 많으시댔더라?”
“어머니, 애기씨는 시집 안 가세요.”
그때 그 말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튀어 나왔다. 그때의 나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기씨께서는 시집 안 가시고 벼슬 하실 거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었다.
“애기씨께서 시집 안 가신다던? 아이고야, 아직도 어린애시네. 우리 범이는? 우리 범이는 언제 장가들래?”
어머니는 내 말을 가볍게 들으셨는지 웃으셨다. “저도 장가 안 들어요.”하려다가 나는 제풀에 놀라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어머니의 질문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모습은 행랑채에서 자식 낳아 기르며 산에 나무하러 다니는 내 모습이 아니라 대감마님처럼 의관을 갖추고 책을 읽는 내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사람은 지 분수껏 살아야지 안 그럼 탈이 나는 법이야.”했던 게 생각났다.
다음날 산에 다녀와서 천자문책을 애기씨께 쓱 밀어두고 돌아서려니까 애기씨께서 날 잡으셨다. 각자 공부하느라 못 뵌 새에 키도 조금 더 크시고 얼굴윤곽도 더 또렷해지시고 입술도 한 일(一)자로 단정해지셨다.
“네 이름은 한자로 뭐야? 성은 순박할 박(朴)에, 범은 무슨 범이야?”
“모르겠는데요.”
“넌 글자 배울 때 네 이름자도 안 찾아 봤어? 궁금하지도 않았어?”
내 이름 ‘범’은 호랑이라는 뜻이었다. 아버지가 호랑이 꿈을 꾸고 날 낳았대서 이름을 ‘범’이라 했다. 머슴 이름이 호랑이라니. 머슴 이름치고는 너무 거창한 이름이라서 어디 가서 말하기도 민망한 이름이었다.
“애기씨 이름자는 뭔데요?”
“뜻 없어.”
늘 ‘애기씨’, ‘막내 애기씨’로 불렸던 애기씨의 이름은 ‘한서운’이었다. 딸로 태어난 게 서운하대서 이름도 ‘서운’이었다. 어차피 시집가면 당호를 붙이거나 택호로 불리고 죽으면 ‘안산 한씨’로 남을 거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하냐 해서 대충 붙인 이름이랬다.
“네 이름자는 뭐냐고.”
“저도 뜻 없어요.”
“그럼 넓을 범(汎)으로 해. 물 위에 떠서 돌아다닌다, 넓다, 물 위에 뜬다는 뜻이 있어. 물 위에 떠다니는 것처럼 자유롭게 넓은 세상에서 널리 뜻을 펴면서 살아.”
내가 초노가 된 건 산짐승을 이름에 넣어서라고 부모님은 농담 삼아 얘기하곤 했지만 호랑이는 산중의 제왕이고 나는 사람 중에 제일 낮은 천민이었다. 사람은 이름하고 반대로 살게 되는 것 같다.
“이름자 마음에 들어?”
“네.”
“그럼 내 이름은 뭘로 해 줄래?”
“애기씨 이름을 제가 감히 어떻게 지어요?”
“너, 공부 계속 할 거지? 천자문 뗐으니까 인제 나랑 같이 공부해야지.”
애기씨는 내가 ‘아니요’라고 할 리 없다는 투로 말씀하셨다. 내 말없음을 동의로 받아들이셨는지 애기씨께서 내 얼굴을 빤히 마주보셨다.
인제부턴 나한테 ‘서운이’라고 부르고 반말해도 돼. 너랑 나는 글동무니까. 자, 내 이름자는 뭘로 해 줄 거야?”
“사, 상서로울 서(瑞)에 구름 운(雲).”
“상서로운 구름. 좋은 징조네.”
사람은 이름과 반대로 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그때 ‘상서로울 서(瑞)’대신에 ‘서녘 서(西)’를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머니는 서쪽에 서방정토가 있어서 착한 사람은 죽으면 서쪽으로 간댔다. 나는 서운이에게 ‘서녘 서(西)’를 주고 서운이는 내게 ‘평범할 범(凡)’을 주었어야 했을까.
나는 애기씨를 ‘서운이’라 불렀다. 천출이에게 “천출 주제에!”라고 소리를 지르시고 서얼도 벼슬할 수 있다는 말에 사랑으로 달려가셨던 애기씨께서 내게 글동무로 지내자고 하셨을 때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셨을지가 아릿하게 마음에 밟혔기 때문이었다. 서운이와 나는 사당 뒷마당에서 대숲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책은 주어진 한계에서 벗어나지 말라고도 했고 누구나 공부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머슴은 성인이 되어도 산에서 나무나 해야 하고, 부녀자는 성인이 되어도 집안일이나 하고, 양반 사내들은 성인이 아니어도 밖에 나가 벼슬하란 얘긴가 보지.”
“홍계월은 나라를 구했잖아.”
내 위로에 서운이가 씩 웃었다. 서운이도 내게 머슴이 나라 구하는 얘기를 해 주고 싶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나중에 내가 하나 써 줄게.”
서운이는 손가락 걸고 도장까지 찍었다. 서운이와 내가 함께 붙어 앉아 책을 읽는 동안 안채의 오동나무는 잎을 떨어뜨렸고 나는 수시로 마당을 쓸어야 했다. 안채에서 서운이가 바느질을 하고 음식을 만들고 나는 오동잎을 쓸다가 둘이서 사당에 가면 사당엔 댓잎이 푸르러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사당에 있는 동안에는 서운이의 혼담이 오가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글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랑채에서 오가는 혼담을 사당에서 막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밤늦게까지 서운이 시집갈 때 쓸 원앙금침에 수를 놓았다. 비단에 금실은실로 수를 놓은 금침은 눈부시게 화려했다.
“어머니, 이게 이렇게까지 사치스러울 필요 있어요? 듣기로 군자는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는데.”
“네가 어미 맘을 어떻게 알겠니. 시댁에 안 처지게 하고 싶어서만 혼수를 호사스럽게 하겠니. 인제 남의 집 사람 되는 내 딸내미, 보고 싶어도 맘대로 못 볼 내 딸내미, 마지막 해 줄 수 있을 때 뭐든지 다 해주고파서 할 수 있는 건 몽땅 다 해주는 거지. 아이구, 우리 마님, 애기씨도 시집 보내시믄 허하고 적적해서 어찌 사시나.”
그 다음 날에는 원앙금침을 넣을 농을 만들려고 안채의 오동나무를 베었다. 오동나무를 베려고 초노 한 명이 갔을 때 서운이는 오동나무에 올라가 내려오려 하지 않고 있었다. 마님께서 짐짓 서운이 신경 쓰지 말고 나무를 베라고 했을 때야 서운이가 나무 위에서 입을 열었다.
“전 시집 안 가요. 혼담 도로 물리라고 해요. 전 어머니처럼 살기 싫어요.”
마님 얼굴에 뭐라 설명하기 힘든 표정이 지나갔다. 하지만 말투는 흔들림 없이 엄했다.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네가 어린애더냐? 아랫것들 있는 데서 부끄럽지 않느냐?”
“저 진짜로 시집 안 가요. 어머니처럼 첩한테까지 부덕 보이는 척해야 하고 마음대로 외가도 못 가고 종일 집안 관리하고 손님맞이하고 제사음식 만들면서 밤에도 책 한 번 마음대로 못 읽고 바느질하면서 이 집안 속에서 집안만 위하면서 그렇게 신산하게는 살기 싫어요.”
어머니가 딸에게 들을 소리는 아니었다. 마님은 한참을 묵묵히 서 계시더니 아기를 안아주듯 두 팔을 서운이를 향해 벌리시고 서운이에게 내려오라 하셨다. 서운이는 다람쥐처럼 쪼르르 내려가 마님 품에 안겼다.
“서운아, 너는 이 에미처럼은 안 살겠지. 우리 서운이는 아들 셋 낳고 서방님 사랑 시부모님 사랑 받고 네 서방이랑 같이 시도 짓고 아들들 잘 가르쳐서 지아비와 자식이 나란히 관직에 나아가 정부인 칭호 받고 잘 살 거야.”
“어머니, 저는 제가 관직에 나아갈 거예요.”
그때 서운이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확고했다. 마님은 바람부는 날 대숲처럼 흔들리셨다.
“네가 아들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꾸미는 것보다 책 읽는 걸 더 좋아하는 아이가 왜 딸로 태어났는고.”
마님께선 서운이가 비녀 팔아 책 산 걸 알고 계셨던 걸까.
“어머니, 전 시집 안 가요.”
“그건 안 된다. 혼인은 가문끼리 하는 거고 이 혼인은 네 아버지와 한씨 가문을 보고 하는 거야. 네가 시집가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란다.”
“시집가서 사는 건 제가 사는 거잖아요! 저더러는 딸이라고 사당에 향불 한 번 못 피우게 하는 가문이 시집가서 사는 건 아니잖아요!”
“서운아, 이미 궁합까지 다 보고 날을 다 잡았어. 자꾸 왜 이러니.”
오동나무 허리에 도끼날이 박혔다. 나무가 서서히 옆으로 쓰러졌다. 서운이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아랫입술을 꽉 물고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나무가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무가 소목장이에게 간 후 마당에는 오동잎과 잔가지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괜찮아. 과거 급제하면 나무에 올라가지 않아도 도성 안을 다 돌아다니면서 볼 수 있어.”
“그게 될까…….”
서운이는 잔가지 하나를 주워서 만지작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겉으로는 큰소리 치면서도 서운이는 자기가 처한 현실을 알고 있었나보다. 부녀자가 과거에 응시할 수도 없을 뿐더러 혹시 급제하더라도 벼슬을 할 수 없을 게 뻔했다. 과거가 하도 자주 시행되어 급제자도 그만큼 차고 넘치는 세상이었다. 누렁이를 ‘황진사’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 그 차고 넘치는 급제자 중 관직에 나가는 사람은 가문이 좋거나 당파가 좋거나 하여간 끌어당겨주는 연줄이 있는 사람이었다. 부녀자인 서운이에게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내 인생인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양반 사내들도 과거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긴 하잖아.”
그 후로 한동안 서운이는 사당에 오지 않고 안채에서 혼수품 바느질만 계속 했다. 나 혼자 사당에서 책을 읽었지만 어쩐지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꾸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마음이 불안했다. 밤이면 종종 악몽을 꾸었다. 의관을 갖춘 양반 노인이 내 한문책을 갈기갈기 찢거나 사당담이 갑자기 높아져서 꼼짝없이 사당에 갇히거나 손발이 묶인 채 책으로 입이 틀어막혀 버둥대는 꿈 등이었다. 서운이가 없으면 혼자서는 책을 읽을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나날이 배가 불러오는 어머니는 밤늦도록 서운이 시집갈 때 가져갈 옷을 짓고 수를 놓았다. 어머니는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면서 베갯모에 목숨 수(壽)를 수놓고 있었다. 두루주머니에는 고양이와 나비가 수놓아져 있었다. 「예기」에 나이 일흔은 모, 여든은 질이라 했고 대국말로 고양이 묘는 모와, 나비 접은 질과 발음이 같아서 고양이와 나비는 장수를 뜻했다. 어머니는 서운이가 자기가 쓸 가위집이며 수저집에 수탉과 맨드라미를 수놓은 것을 보고 “이건 서방님께나 수놓아 드리는 건데”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수탉의 벼슬을 계관(鷄冠)이라 하고 관(冠)자가 관직 관(官)과 음이 같아서 수탉은 관직을 뜻했다. 맨드라미는 닭벼슬을 닮았다 하여 계관화(鷄冠花)라고 했으니까 역시 벼슬을 의미했다. 그러고 보니 봉황이 닭 비슷하게 생긴 것도 닭이 벼슬자리를 뜻하기 때문인 듯도 했다. 휴우-. 자수에서 한자를 떠올리는 내 꼴에 한숨이 나왔다. 사람이 지 분수껏 살아야지. 내 한숨은 서운이의 중얼거림과 같은 무게였다.
오동나무가 베어진 후로 늘 얼굴이 어두운 서운이를 어떻게 해서든 기분 좋게 해 주려고 어머니는 짓고 있는 혼례복을 서운이에게 미리 입혀 보기도 하고 활옷 소매의 모란 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 애기씨 곱기도 하셔라. 이거 입고 시집가시면 딱 선녀 같으시겠네요. 요기 보세요. 여기다는 부귀영화 누리고 사시라구 모란수를 놓았구요, 요기다는 자손번창하라고 석류수를 놓을 거구요, 그리고 꽃하고 새도 수놓을 거예요. 꽃하고 새는 부부간의 금실을 뜻하니까요.”
“침모, 그냥 대충 놔. 어차피 다 소용 없어. 어머니 혼례복에도 석류며 화조자수가 있었고 베개엔 원앙도 있었는걸. 어머니가 어젯밤에 나한테 삼작노리개며 가락지며 다 보여주시면서 그러시더라구. 예전에 아버지 지방관직 가실 때 ‘귀한 패물을 드리니 이걸 지니고 다시 돌아오세요’하는 뜻으로 가락지 채워 드렸더니 아버지는 그걸 기생한테 정표로 주셨다고. 그 때 그 가락지 나 주셨으면 내가 잘 썼을 텐데. 그러니까 침모, 무슨 의미, 상징 이런 거 다 헛거야.”
서운이는 그러고서 날 보며 깔깔 웃었다. 가락지도 서운이 손에 들어갔으면 책값으로 쓰였겠지. 나는 서운이가 수탉과 맨드라미를 수놓았던 게 생각났다.
“아이고, 애기씨, 아직 나이도 어린 애기씨가 생각은 왜 이렇게 인생 다 산 아낙네 같으시네요. 애기씨, 시집가서 잘 사시는 부인네도 많아요.”

“침모, 나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은 거야. 시부모 공경하고 아들 낳아 기르고 남편 내조하고 이런 거엔 별로 흥미 없어. 그런 것들보다는 글 읽는 게 더 좋고 글을 읽으면 그걸 현실세계에 적용하고 세상을 바꾸고 싶어져. 공자님 제자 자로도 그랬다구.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의를 구현할 방법이 없다고. 아마 서얼들이 벼슬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그래서겠지.”
그날 저녁 서운이가 보여줄 게 있다고 나를 불렀다. 서운이의 방문이 열리자 방구석에 검고 윤기 나는 가체가 놓여 있었다. 다리13)가 열 개 넘게 들어간 듯했다. 저 정도면 소 몇 마리 값, 몇 백 냥은 족히 넘음직했다. 검고 윤기 나고 탐스럽게 염색한 머리카락들을 팔뚝만한 굵기로 밧줄처럼 땋아 둥글게 돌려 세 층을 올리고 뒤로도 먹구름 같은 머리채를 풍성하게 땋아 젖혔다. 검고 거대한 가체에는 동황색 웅황판이며 비단에 진주를 단 진주수며 구리에 초자를 입힌 법랑잠을 달아 장식했다. 중인 집으로는 열 채, 행랑채로는 몇 백 채 값은 될 듯했다. 가난하고 가난한 집 아낙들이 굶다 못해서 최후에 '신체발부수지부모'라는 말을 못 들은 척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고 내다 판 머리카락을 붉은 물감, 벌꿀, 송진, 소금, 참깻묵, 숯, 참기름 녹반을 넣어 끓인 염료로 염색해야 가체를 만들 수 있었다. 저 화려하고 웅장한 가체 머리카락 올올이 그 머리카락을 내다 판 아낙네들의 한숨과 눈물이 서려 있을 것이다. 그런 가체를 머리에 이고 행복하게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시집가면 이고 살아야 할 가체야. 꼭 검은 구렁이가 또아리 튼 것 같아서 무섭지 않아?”
“구렁이라 그러니까 생각난다. 구렁이는 ‘업’이라더라. 구렁이가 집안에 있는 동안은 집이 잘 돌아가지만 구렁이가 떠나면 그 집안은 망해 버린대.”
“그렇지도 않아. 검은 구렁이는 한 번 들어오면 죽거나 내쫓기기 전엔 그 집을 절대 떠날 수 없고 그 구렁이가 죽으면 금방 또 새로운 구렁이를 들여. 그러면 집안은 망하지 않아.”
서운이는 가체를 들어다 자기 머리에 얹었다. 무겁고 큰 구렁이가 서운이의 머리 위에 또아리를 틀었다. 서운이 머리보다 몇 배는 더 큰 구렁이가 금방이라도 서운이를 칭칭 감아서 삼켜 버릴 듯했다. 서운이는 큰 칼을 쓴 죄인마냥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이걸 쓰고서 오경이면 일어나서 시부모님께 문안을 드려야 한대. 그게 예를 갖추는 거래.”
난 생각해 오던 것을 입 밖으로 내야 한다고 느꼈다.
“시집가실 때 절 교전노로 데려가겠다고 마님께 말씀드려 주세요.”
내 갑작스러운 존대가 이상했는지, ‘교전비’도 아닌 ‘교전노’란 말이 이상했는지 서운이가 가체를 내려놓다 말고 나를 빤히 보았다.
“따라가서 지금처럼 몰래 책심부름이나 하려고요.”
“그 집에서도 같이 책 읽게?”
“아니오.”
이 집에 계속 있으면 분수 넘게도 공부를 하고 싶을 것 같았다. 하지만 좁은 안채를 벗어나서 벼슬을 하고 싶다던 서운이도 어쩔 수 없이 시집을 가는데 나라고 공부를 계속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송충이가 꽃을 먹을 수 없듯이 종놈이 글을 할 수도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책을 놓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서운이가 시집을 가서도 책을 읽고 글을 지을 수 있다면 나는 책심부름이나 몰래 해다 주며, 심부름 다니는 길에 조금씩 책을 넘겨보며 그걸로 만족하고 평생 머슴으로 살 작정이었다. 하지만,
“너는, 머슴으로 살 수 있어?”
막상 그 말을 듣자 말문이 탁 막혔다. 한 번 글을 배우면 다시는 글을 배우기 이전처럼 살 수는 없게 된다.
“애기씨도 시집 가셔서 대갓집 며느리로 사실 거잖아요.”
“난 시집 안 가. 난 안채에만 갇혀 살지 않아. 저자를 자유롭게 나다닐 거야.”
「예기」에서 이르길 혼인은 두 사람이 아니라 두 성(姓)이 결합하여 위로는 제사를 모시고 아래로는 자손을 두는 일이라고 했다. 서운이 혼자 가지 않겠다고 버틴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서운이는 자신이 대갓집 며느리로 살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시집가서 ‘안채에만 갇혀 살기’ 전에 저잣거리를 마음대로 나다닐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지금 같이 밖에 나갈래?”
“지금? 어떻게?”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서운이 옷을 지으면 한 번씩 내게 입혀 보곤 했다. 내가 그 옷을 입고 어머니 앞에 서면 어머니는 그 옷이 내 옷인 양 “아이구, 곱기도 해라”하고 좋아하곤 했다. 내가 자라 ‘사내애 태가 나서’ 서운이 옷을 입어 보지 못 하게 된 것을 어머니는 무척이나 섭섭해 했다. 그게 계집아이 옷을 못 입혀봐서인지 새 옷을 못 입혀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렸을 때 서운이의 새 옷을 입어 보고서 좋아했는데 서운이에게 내 땀내 밴 옷을 입히니까 어쩐지 민망했다. 다행히 서운이는 밝은 날 가마도 쓰개치마도 없이 팔을 휘두르며 걷는 게 좋은지 내 옷을 거리낌 없이 입고 여긴 어디야 저긴 어디야 물어보며 거리를 활보했다.
“둔여차기천승혜 제옥대이병치 가팔룡지완완혜 재운기지위사 억지이미절혜 신고치지막막 주구가이무소혜 료가일이유악 척승황지혁희혜 홀림예부구향 문붕비여마회혜 권국고이불행(나는 천대의 수레를 몰아 옥으로 만든 수레바퀴를 나란히 줄맞춰 달리네 수레 끄는 여덟 마리 용이 꿈틀거리고 수레의 구름깃발 뱀처럼 펄럭이네 마음을 억누르고 속도를 늦추어도 정신은 높이 솟아 멀어져만 가네 구가를 노래하고 순임금 적의 춤을 추며 잠시 날을 빌어 즐기네 햇빛 휘황한 하늘로 올라 즐기다가 문득 옛 고향을 흘끗 보니 글벗도 슬퍼하고 내 말도 고향을 그리워하여 뒤돌아보며 나아가지 못하네).”14)
‘혜’자를 세게 하여 초사를 읊는 서운이는 조금 과하게 들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불안함을 애써 감추고 있는 것처럼.
“서운아, 이제 그만 들어가자.”
“아직 안 돼. 이쪽 골목 지리를 아직 다 못 익혔어.”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줄 알았는데 서운이는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지리는 익혀 뭐 하게? 얼른 돌아가기나 하자.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구.”
“나 시집가는 날 혼수패물 싸들고 가출할 거야. 그날은 낯선 사람도 많고 바쁘고 정신 없어서 몰래 빠져 나가면 아무도 모를 거야. 가출해서 날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살 거야. 노비들 도망가서 평민으로 사는 것처럼.”
지금 사는 집 행랑채에서는 머슴으로밖에는 살 수 없을 것이다. 떠나야만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럼 가출할 때 날 길동무, 글동무로 데려가 줘.”
서운이의 혼삿날이 다가올수록 혼수목록에 완결표시가 늘어갔다. 오동나무는 통영까지 내려갔다가 오색으로 빛나는 자개장이 되어서 돌아왔다. 어머니는 혼례 때 서운이가 입을 옷을 속곳까지 다 새걸로 지었다. 분홍빛 속적삼은 나쁜 일은 빠져 나가고 시원한 일만 있으라고 겨울에도 모시로 만들고 활옷은 포근하고 따뜻한 일만 있으라고 여름에도 솜을 넣는댔다.
혼례날 집안은 시끌벅적했다. 종들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해서 동네 아낙들과 장정들까지 일을 도왔다. 술이 몇 동이씩 들어오고 소와 돼지를 잡았다. 부엌과 마당의 솥에서는 펄펄 김이 올랐다. 떡을 치고 국수를 삶았다.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색색깔 자투리천을 이어붙인 조각보로 혼수물목을 감쌌다. 여기저기서 뭐가 부족하다느니 뭐를 가져오라느니 소리를 쳤다. 한 발짝 걸을 때마다 사람들과 부딪쳤다. 저마다 바쁘게 종종걸음을 쳤다. 다들 정신없이 바쁜 틈을 타 약속장소인 동쪽 담 밑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서운이가 내 옷을 입고 봇짐을 메고 뛰어 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서운이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들켰어.”
모든 일이 예상에서 비껴났다. 저녁쯤 와야 할 신랑 일행이 대낮에 마을 어귀에 도착해 버렸고 머슴으로 변장한 서운이가 고개까지 푹 숙이고 다녔는데도 취비15) 하나가 서운이를 알아 봐 버렸다. 서운이는 은장도로 활옷을 죽 찢고 왔다고 했다. 혼례 때까지 시간도 벌고 혹시나 활옷이 찢긴 게 불길하다 하여 혼례를 취소하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있었다.
서운이가 봇짐을 내게 넘겼다. 아무래도 서운이보다는 빠른 내가 서운이의 손을 잡아 이끌고 북적이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헤치며 나갔다. 서운이네 일가친척들까지 속속 도착해서 집안은 더 붐볐고 서운이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도 그만큼 늘어났다. 때마침 신랑 일행이 도착했고 서운이가 없어졌다는 걸 누가 알아차렸는지 그 취비가 고했는지 여기저기서 서운이를 찾기 시작했다. 어디서 서운이 어머님이 서운이를 부르시는 소리와 우리 어머니가 놀라서 “아이구 이런 변이 있나! 누가, 누가 혼례복을 이렇게…….”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운이도 나도 멈칫했지만 곧 둘 다 정신을 차리고 대문으로 향했다. 대문에는 서운이 아버님께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계셨다. 그곳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나머지 문들은 모두 닫혔다. 우리는 바늘 하나 꽂을 수 없을 것 같은 인파 속을 미친 듯이 헤집고 들쑤시고 다녔다. 그릇 부딪치는 소리, 서운이를 부르는 소리,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뒤섞였다. 솥뚜껑이 열리고 솥에서 김이 오를 때마다 고깃국 냄새며 잔치국수 국물내가 나고 항아리 뚜껑이 열리면 장냄새며 새큼한 김치 냄새가 났다. 특별한 날이라고 빨아 입은 무명치마며 바지들, 풀을 먹여 서걱이는 비단치마며 두루마기 자락이 다리에 걸렸다. 쪽찐 머리 사이로 산처럼 높고 기세등등한 가체머리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서운이와 나는 이심전심으로 사당으로 향했다. 일단 그곳에 숨어 있을 작정이었다. 아무도 부녀자와 머슴이 사당에 갔다고는 상상하지 못 할 터였다.
“애기씨께서 저기 계십니다!”
사당 반대쪽을 향해 소리 지르고선 사람들의 눈이 그쪽을 향한 틈을 타 우리는 잽싸게 담을 넘어 사당에 들어갔다.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고 옷매무새를 다듬을 수 있었다. 담 너머에서는 여전히 서운이 찾는 소리며 손님 접대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서운이의 손을 잡고 사당 뒷마당의 대숲을 헤쳤다.
“엄마…….”
서운이가 소리를 죽여 가며 울었다. 나도 눈물이 나왔다. 엄마…….어릴 때 부르던 대로 불러보자마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제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막막했다. 서운이와 나는 서로의 들먹이는 어깨를 꼭 안았다.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범이야, 만약에 혹시 이 담에 내가 금의환향하면은, 예전에 너한테 약속했던 이야기도 써 주고, 노비문서에서 네 이름을 지워 줄게.”
천출이를 양반 명부에 올리는 것에 비교될 만한 허황된 꿈이었지만 나는 서운이와 손가락을 걸었다.
“너도, 나도 똑똑하니까 너는 충신이 되고 나는 학자가 될 수 있을 거야.”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 믿음에라도 의지해야 했다.
피곤했는지 서로 기대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 보니 어느덧 저녁때였다. 담 너머에서 서운이를 찾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집안 상황이 어떤지 잠깐 넘어다보고 오자.”
아마 그건 운이 없었던 게 아니라 팔자가 사나워서 운명이 그렇게밖에는 되지 않았던 것일 게다. 사당 너머의 동정을 살피려고 나온 순간 파혼을 고하려 사당으로 들어오시던 문중 어른들과 마주친 건. 아무리 나이 드신 분들이라 해도 애 둘이서 어른 여럿을 이길 수는 없었다. 서운이와 나는 어르신들의 체통을 구겨가며 말 그대로 개처럼 질질 사당 밖으로 끌려 나왔다. 어찌나 발버둥을 쳤는지 봇짐에서 패물이 쏟아져 나왔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음흉한 종놈이 순진한 애기씨 꼬셔서 주인댁 재물 빼돌리는 것으로 보이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어디 감히 천한 종놈이 이런 해괴한 짓을……. 내 이놈을 쳐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으리라!”
“아버지, 다 소녀가 했습니다. 부인으로 살지 않으려고요!”
“너는 어찌 아직도 철이 덜 들어서 이런 치기어린 행동을 일삼느냐!”
서운이는 안채로 끌려갔고 나는 고방에 갇혔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오신 서운이 아버님도 수치심에 붉어진 얼굴을 어쩌지 못하셨다.
“네놈이 문중 어르신들도 다 모이신 날 이런 짓을 한 이유가 무엇이냐!”
“같이 이 집을 떠나서 서운이는 벼슬을 하고 저는 학문을 하려 했습니다.”
“이 미친놈이……. 이 놈을 죽을 때까지 쳐라! 복날 개 잡듯이 치란 말이다!”
어떻게 할 틈도 없이 입에 재갈이 물리고 손이 묶이고 몸이 멍석에 둘둘 말렸다. 고방 밖으로 소리가 새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종놈 하나 죽이고 애기씨는 시집 보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으면 끝날 일이었다. 온몸에 매가 쏟아졌다. 사정없이 내리치는 매를 받아낼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멍석에 머리끝 발끝까지 말려 있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입에 물린 재갈 때문에 제대로 비명 한 번 지를 수 없었다. 이대로 살점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고 뼈가 부서져 온몸이 매에 흩어져 죽어도 어디 가서 호소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게 천한 종놈이었다. 나는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의식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깨어나 보니 행랑채였다. 내가 한참 맞고 있을 때 안채 마님께서 달려 오셔서 제발 나를 살려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신 덕에 간신히 행랑채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 후 내리 한 달을 혼수상태였댔다. 눈을 떠 보니 머리맡에 서운이와 내가 보던 책과 열매 달린 오동나무 가지가 놓여 있었다.
내가 혼수상태에 있던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어머니는 내 여동생을 순산했다. 파혼은 취소되었다. 서운이는 가체에 눌려 고개 한 번 제대로 못 들고 혼례를 치러야 했다. 꽃가마 지붕에 액막이용으로 호랑이 가죽을 덮고서 시집을 간 서운이는 사흘 만에 죽어서 시집 선산에 묻혔다. 방에 앉아 글을 짓고 있다가 시아버지가 갑자기 들어오시는 바람에 놀라 일어나다가 가체에 목이 부러졌다고 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으시고 마님께선 안채 마당의 서운이 오동나무 밑동만 한없이 쓰다듬으셨다. 그리고 내게 서운이가 남긴 책과 오동나무가지가 전해졌다. 나는 행랑채 앞마당에 오동나무 열매를 심었다.
종자기가 죽고 나서 백아는 거문고현을 끊고서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서운이가 죽은 후로 다시는 책을 펼쳐보지 못했다.


각주
1) 가체 만드는 데에 쓰이는 머리카락
2) 나무하는 남자종
3) 서정주의 시 「자화상」 변형.
4) 아들을 바라는 의미에서 동자상과 기자도끼를 엮은 노리개
5) 여종 출신 첩을 비하하는 말
6) 「홍계월전」은 19세기 소설이지만 그 내용이 이 소설과 맞아서 넣었다.
7) 농사일을 보고하고 관리하는 노비
8) 정조 15년(1791)년 좌의정 체제공이 한 말
9) 이덕무의 「사소절」의 한 구절.
10) 성호 이익이 쓴 글.
11) 정조 시대 경상도, 전라도 등지의 서얼 유생 372명의 항소.
12) 정범조의 「해좌집」에 나오는 구절
13) 가체 만드는 데에 쓰이는 머리카락
14) 굴원의 「이소」의 일부. ‘문붕’은 원문에는 ‘복부(僕夫:하인)’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서운이가 ‘문붕’으로 고쳐 부른 것이다.(屯余車其千乘兮 齊玉?而?馳 駕八龍之婉婉兮 載雲旗之委蛇 抑志而?節兮 神高馳之邈邈 奏九歌而舞韶兮 聊假日以푃樂 陟陞皇之赫戱兮 忽臨톛夫舊鄕 文朋悲余馬懷兮 풆局顧而不行 )
15) 부엌일 하는 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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