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부터 이틀간 실시된 제47대 총학생회 연장투표에서도 투표율이 50%에 미달하여 총학 선거가 무산됐다. 84년 총학생회가 부활한 이후 지금까지 선거 자체가 무산된 적이 없었던 점을 생각하면 놀랄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 현상을 놀람과 충격으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여기까지 이르게 된 안팎의 요인들을 냉철하게 점검하는 자성의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번 결과는 예상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총학 주최 공청회나 선거유세의 자리에 불과 수십 명의 학생만이 모여 앉아있던 모습에서 총학생회의 활동이나 선거에 대한 학생 일반의 무관심은 명확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이틀간 재투표를 실시하고 투표율 제고를 위해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졌는데도 선거가 무산된 것은 학생들의 무관심이 일시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다른 대학에서도 낮은 투표율과 소위 ‘비운동권의 약진’ 현상이 강하게 나타났다는 점에서 학생회 및 학생운동과 관련한 어떤 시대적 변화를 읽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새로운 시대감각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 채 총학생회의 구조적 소외가 점차 커져왔던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 시점에서 학생 대표조직의 존재의의와 활동방식에 대해 뼈아픈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런 무관심을 보면서 오늘 우리 대학의 문화와 의식에 대한 깊은 우려를 갖게 되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대학은 지식의 전수 못지 않게 책임감, 비판의식, 균형감각을 훈련하고 도야하며 적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동안 학생활동, 특히 총학생회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풀어나가며 사회적으로 대학인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활동은 학생들에게 매우 소중한 실천의 장이었다. 선거에 대한 학생 일반의 무관심은 대학문화가 독자적인 비판성과 실천성을 상실하고 점차 시대순응적인 실용주의에 침윤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대학이 단기적인 시야와 실용적 관심에 지배당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서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또한 이 무관심 속에 자기 이익만을 중시하고 남의 희생 위에 무임승차하려는 공짜심리, 그리고 공적인 것에 대한 냉담함이 담겨있을 수 있다.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를 고려하고 미래를 위해 책임지려는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화된 결과가 아닐까 염려되는 것이다.

 

 

무산된 선거는 내년 3월에 다시 치러질 것이다. 하지만 철저한 자기성찰과 진지한 대안모색이 없는 낡은 틀로는 무관심의 확산을 막을 길이 없다. 대학 내 의사소통구조와 대의방식, 학생활동의 내용과 지향 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동시에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가는 운동이 필요하다. 이 운동은 이전과 같은 고답적이고 정파적인 성격을 과감히 깨뜨리는 작업과 함께 새로운 윤리성과 책임감, 건강한 비판의식을 회복하려는 대학구성원 모두의 적극적 노력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의 선거무산이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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