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 전북 부안군 군수가 지난 7월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핵폐기물(원전수거물) 처리장’ 유치신청서를 산업자원부에 제출한 이래, 핵폐기물 처리장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나는 안정적인 전력 확보를 위해 핵 발전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핵폐기장 건립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산자부측의 조사에 따르면 부안군 위도가 대규모암체가 발달하고, 활성단층이 없어 부지로 적합하다고 한다. 단 10여 일만에 이뤄진 조사라 신뢰가 가지는 않지만, 이러한 문제의 경우 ‘중론(衆論)’이 곧 ‘정론(正論)’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핵폐기장 부지는 ‘중론(衆論)’을 아예 무시하면서 선정됐다.

 

우선 군의회가 유치계획을 부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군수가 이를 강행한 것은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도 지키지 않은 처사다.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정부는 일단 부지를 선정한 것을 기정사실화하여 ‘밀어붙이기’식으로 사업을 진행했고, 이는 지금의 부안 사태를 낳았다. 더군다나 산업자원부나 한국수력원자력은 부지선정 예상지역의 주민들에게 핵폐기장에 관한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현재 건설을 추진 중인 핵폐기장에 중․저준위 폐기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큰 고준위 폐기물은 저장되지 않는 것처럼 주민들에게 거짓 홍보를 하기도 했다. 핵폐기장 건립의 명분이 주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그저 덮어두고 무턱대고 사업을 추진한 무모함의 핑계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안 사태가 전북 전체로 퍼지는 등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돼서야 대화를 시작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핵폐기장 건립 명분이 주민 여론 무시한 정부 실책의 핑계 될 수 없어


또한 이번 사태는 정부의 국책 사업 추진 관행에 경종을 울린다. 여론 수렴 과정 등 적정한 절차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음이 드러났는 데도 적시에 시정노력을 보이지 않았으며, 일관성 없는 보상 정책도 정부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켰다. 경부고속철도 사업, 새만금간척 사업 등 정부의 국책 사업 표류는 이번 한번이 아니다.

 

현재 핵폐기물들은 핵발전소에 보관돼 있는데, 앞으로 3년 안에 정상적인 핵폐기물 처리장에 보관시켜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핵폐기장 건립에 소요되는 시간도 3년여에 이르기 때문에, 핵폐기물 처리장 건립은 정부 입장에서는 매우 시급한 과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차대한 문제를 처리하면서, 당연히 예상되는 주민들의 반발을 지나치게 경시한 정부 당국의 태도는 부안을 주민과 경찰이 대치하는 ‘계엄’ 정국으로 만들었다.

 

주민들에게 핵폐기장 건립은 ‘생존’에 위협을 주는 중대한 문제다.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핵폐기물을 지난 20년간 안고 있던 대만의 란위섬에는 이중 갑상선 암으로 인한 사망과 기형아 출산이 그간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란위섬 주민들은 이제야 더 이상 핵폐기물을 받을 수 없다며 ‘반핵운동’에 나서고 있다. 핵폐기물에 대한 부안 주민들의 막연한 불신감뿐 아니라 이러한 주변국의 사례는 주민들의 ‘생존’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킨다. 물론 주민에 대한 보상을 전제로 위도를 비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땅값, 집값을 보상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생존’의 중요한 수단이었던 사회적 네트워크의 상실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주민들이 억대를 호가하는 보상금을 요구하는 것을 ‘님비’라며 비판만 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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