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공사터의 감나무를 볼 때마다 애처롭다는 생각이 든다. 감골 터줏대감으로 해마다 탐스런 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나무였다. 큰 키에 잘 생긴 모습하며 다른 어디서도 보기 힘든 멋쟁이 나무였다. 그런 나무가 잎도 없는 가지를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안쓰럽기 짝이 없다.

 

규장각 확장이 필요하다는 건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감골이 다치니까 그곳에 확장공사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감나무를 옮겨 심을 때 조금만 더 조심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 크다. 하기야 그 감나무는 옮겨 심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범대 부근의 공사터에서는 벚나무 거목들이 통째로 잘려나갔으니 말이다.

 

우리 캠퍼스를 걸어보면 환경을 배려해 어떤 일을 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별로 없다. 무엇이든 방해가 되면 밀어 버리고 그 위에 건물과 도로를 만들어 놓은 모습뿐이다. 나무 하나 바위 하나를 보전하기 위해 에돌아간 모습은 무척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가 ‘환경친화’를 부르짖는데, 왜 우리만은 아직도 ‘개발지상주의’의 잔재를 털어내지 못할까.

 

요즈음은 자동차, 오토바이 공해가 캠퍼스 환경을 오염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 굉음을 내며 달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때문에 어느 길 하나 마음 놓고 산책하기 힘든 형편이다. 과거에는 성역처럼 여겨졌던 도서관 뒷길까지도 이제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캠퍼스 안에서 인명사고가 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지경이다.

 

이 문제의 핵심은 주차공간의 부족에 있다. 주차공간이 부족해 여기저기 주차를 허용하다 보니 온 캠퍼스의 길이 자동차도로로 변해 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무질서하게 주차해 놓은 자동차들은 그 자체로 심각한 공해를 만들어내고 있다. 주차질서가 특히 문란한 몇몇 곳을 보면 여기가 과연 대학인지 의심을 하게 만들 정도다.

 

캠퍼스의 길들을 하루 빨리 보행자의 몫으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주차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수요를 줄이고 공급을 늘리는 길 이외의 방법은 없다. 그런데 기존의 공간에서 더 이상의 주차공간을 빼내기는 힘든 형편이다. 지하로 들어가기도 어려운 일이고 보면, 유일한 대안으로 남는 것이 주차빌딩의 건설이다. 주차빌딩을 짓지 않고서는 주차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본다.

 

나는 학생들이 오직 강의를 통해서만 무엇을 배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의실 밖에서 교수나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배우는 것도 그 이상으로 많다고 본다. 아니 몇 년 동안 캠퍼스에서 생활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배움의 원천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친화적인 캠퍼스를 만드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 된다.

 

환경을 배려하는 따뜻함은 찾아보기 힘들고 무질서하게 주차된 자동차들로 가득 찬 캠퍼스에서 우리 학생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까? 이들에게 환경을 아끼는 성숙된 시민이 되라고 설교한다 해서 무슨 효과가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설교를 늘어놓기 전에 먼저 모범을 보여야 무언가 배우는 게 있을 것이다. 규장각 공사터에 수척한 모습으로 서 있는 감나무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준구 사회대 교수ㆍ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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