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순 강사·미학과

40여년 전 『자본을 읽는다(Lire le Capital)』의 공저자로 국내에 소개되었다가 오랜 동안 잊혀져있었던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1940-)가, 그의 두 저서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인간사랑, 2007), 『감성의 분할 - 미학과 정치』(도서출판b, 2008)와 함께 한국의 독자들을 다시 찾아왔다. 출간된 이 책들 외에도 그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불화 - 정치와 철학(La mésentente. Politique et philosophie)』을 비롯해서 몇 권의 책이 더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랑시에르의 한국 상륙’이 이제 본격적으로 개시된 것인가?

랑시에르의 사상적 여정에서 출발점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마르크스주의다. 그러나 그는 『자본을 읽는다』 이후 자신의 스승이었던 알튀세르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사회와 정치를 사유하는 마르크스주의 개념들을 재고하기 위한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이 작업을 이끌었던 하나의 가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노동자 계급의 고유한 담론이 존재한다는 가정이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그는, 푸코가 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말을 담고 있는 19세기 노동운동사의 문서고를 파헤쳤다. 거기에서 그는 정치는 대립하는 힘들의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질적인 세계들 간의 관계(그가 나중에 ‘불화’라고 부르게 될)에 의해 규정된다는 논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말(logos)의 상황 혹은 무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감성의 분할(le partage du sensible)’이다. 즉 어떤 감성이 로고스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름을 갖게 되며, 어떤 감성은 단지 소리이거나 웅얼거림일 뿐인가, 혹은 어떤 것이 가시적인 것이며 말해질 수 있고, 어떤 것은 단지 비가시적이며 말해질 수 없는가? 랑시에르에 따르면 모든 질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 감성의 분할을 전제한다. 정치가 두 세계 사이의 갈등이라면, 그것은 서로 다른 두 감성의 분할들 사이의 대립이다. 정확히 이러한 의미에서, 정치는 미학(즉 감성론)과 구별되지 않는다. 따라서 랑시에르가 ‘미학의 정치’를 말할 때, 그것은 미학의 정치로의 종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오히려 정치와 미학이 감성의 분할이라는 동일한 문제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랑시에르는 정치를 민주주의와 동일시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정치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혈통이나 부(富)의 자격에 기초해서 구성되는 귀족정이나 과두정과는 달리 정치철학의 정초자들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명하고 있듯이 민주정은 통치할 어떤 자격도 없다는 사실에 의해서 민중이 통치할 자격을 얻는 체제이다.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는 어떤 근거 혹은 원리(arche)에 기초해서 성립되는 체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원리의 부재에 의해서 정의된다. 원리의 이러한 부재(이것을 특별히 랑시에르는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는 모든 존재하는 질서를 우연적인 것으로 만들고, 따라서 새로운 감성적 질서의 창조를 가능케 하는 부재라는 점에서 랑시에르가 말하는 정치의 토대를 형성한다.

따라서 랑시에르가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서, 민주주의를 비난하는 정치가들이나 정치철학자들의 담론에 맞서 민주주의에 대한 변론에 나서고 있을 때, 그가 옹호하고 있는 것은 정치 자체다. 그의 변론은 현재의 정치무대에 대한 개입이라는 점에서 열정적이지만, 동시에 정치철학의 역사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성찰적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은 랑시에르가 지적하고 있듯이, 민주주의라는 말의 탄생 시기부터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그 비판은 전체주의 체제들의 붕괴 이후, 그리고 세계경제질서에 적응하기 위해 국가체제의 재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지금 더욱 강렬한 모습을 띠고 나타나고 있다. 그 비난의 요체는 민주주의는 고삐 풀린 개인들의 무제한적 욕망, 즉 소비적 개인의 지배이며, 따라서 사회적 질서의 해체를 낳는다는 데 있다. 그러나 랑시에르가 말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의 실질적인 비밀은 그것이 진정한 정치의 원리인 민주주의적 과잉(l'excès)을 봉합하려 한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만약에 우리 사회가 병들고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적인 소비적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의 경제적 질서에 기초해 정치의 질서를 조직하려는 과두제에 의해서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 혹은 정치는 확실히 누군가에게 증오와 두려움의 대상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용기와 기쁨의 대상이 될 것이다.

랑시에르에게서 정치를 사유하는 일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학적 성찰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런데 이때 미학이라는 말은 보다 엄밀한 관점에서는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정치가 감성의 분할에 관여한다고 할 때, 따라서 정치는 원리적으로 미학적이라고 말할 때, 이 때 미학은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시공간의 형식으로서의 ‘감성’(Ästhetik)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 상응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미학, 즉 근대에 감성의 자율성에 관한 담론으로 성립하게 된 미학은 이 감성의 공간에 참여하는 한 방식으로서, 특정한 위계적 질서에 대한 단절의 이름으로서 등장한 것이다. 랑시에르는 『감성의 분할』이라는 짧은 책에서 두 번째 의미에서의 미학이 정치와 맺고 있는 관계를 논의하고 현대예술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미학적 논쟁들, 예를 들면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개념들을 검토한다. 여기에서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반-미학’(anti-ésthétique)을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 상응하는 논리로 이해하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반-미학은 반-민주주의, 즉 반-정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랑시에르의 메시지는 다소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정치의 불가능성의 불가능함이다. 출간된 두 권의 책을 시작으로 다시 찾아온 랑시에르가 우리의 주목을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철학과 미학이 국내에서 의미 있는 논의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 이 서평은 국역서가 아닌 원서를 대상으로 씌여졌습니다.

『감성의 분할』 자크 랑시에르 지음┃오윤성 옮김┃도서출판b┃159쪽┃1만4천원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 자크 랑시에르 지음┃백승대 옮김┃인간사랑┃190쪽┃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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