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원 철학과·06

어학은 학문의 기본이다. 학문을 하는 데에 있어 외국어 원전 텍스트를 독해해야 하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따라서 학문의 장인 대학에서 학생의 제2외국어 강좌 수강을 필수화한 것은 그 취지 면에서는 타당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제2외국어 강좌 수강을 필수화한 결과, 이미 해당 외국어 능력을 충분히 갖춘 학생이 ‘입문’ 강좌를 수강해 학점 취득의 편의만을 노리는 일은 고질적인 문제가 되고 말았다.

입문 강좌는 전체가 교양 수업으로 개설되어 있으며, 따라서 평가는 상대평가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로 인해 강의 개설의 원래 취지가 외국어 입문자를 위한 기초적 교육 제공이었음에도, 실제로는 입문자가 학점상 불이익을 받는 부조리가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무고한 학생들이 피해를 입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불완전한 행정적 처결로 인해 학생들의 배움의 기회가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용이한 학점취득을 위해 외국어 실력자가 입문강의를 들으며 실제 입문자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고 학점상의 피해를 끼치는 일은 대학 사회 전체의 비극이다. 어쩌면 최대의 피해자는 뻔히 아는 내용을 지루하게 다시 들으며 45시간 가량을 헌납해야 하는 학생 자신일지도 모른다. 학생의 지적 에너지 낭비를 유발하는 이 같은 현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해 현재 대학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응은 기껏해야 강의 현장에서 강의자가 직접 학생실력을 판별하여 부적합자를 걸러 내거나 개강 오리엔테이션 때 실력자의 수강취소를 권고하는 정도인데, 아무래도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입문 수업의 학점책정 방식을 절대평가제로 전환하거나 수강 인원을 대폭 제한하여 학생 개개인의 실력에 대한 강의자의 평가를 용이하게 하는 등의 방법이 동원될 수 있다. 그러나 절대평가제로의 전환은 더 큰 행정적 혼란을 낳을 가능성이 크고, 수강인원 제한은 배움의 기회 박탈이라는 점에서 건강한 해결책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학생의 외국 유학, 장기체류 경험 등을 입학 당시에 조사하여 해당 지역의 언어 입문수업 수강을 제한하는 것이 비교적 확실한 대안이라고 본다. 이러한 제한 역시 수업권 침해라고 한다면, 강의자 면담을 통해 별도 승인을 얻은 학생에 한해서만 수업참여를 허락하는 등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