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 7명의 토지 30만8388㎡(시가 41억원)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렸다. 각종 언론은 앞다퉈 이를 보도했고 누리꾼들은 ‘애국의 비장함’을 손가락에 실어 댓글을 달았다. 독도문제, 일본군 성노예 문제, 동해 문제 등의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도 같은 일은 반복된다. 여전히 우리에게 일본은 군국주의적 욕망에 사로잡혀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나라이고, ‘반일감정’에 어긋나는 발언을 하는 한국인은 곧장 친일파로 간주된다. 지금, 우리의 민족주의는 올바른 방향인가? 한편 현재 일본의 민족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달 29일 『한일 역사인식 논쟁의 메타 히스토리 - ‘한일, 연대21’의 시도』가 발간됐다. 복잡한 한일관계를 풀기 위한 제3의 방법을 찾는 모임인 ‘한일, 연대21’이 네 차례에 걸쳐 개최한 심포지엄과 포럼 등의 강연문을  엮은 것이다. 이 모임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대항해 전국적인 반대 운동을 벌였던 고모리 요이치 교수(小森陽一, 도쿄대겷饑嵐??П린?와 『화해를 위해서 - 교과서, 위안부, 야스쿠니, 독도』의 저자 박유하 교수(세종대겴耉樗球?逵?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한일관계를 모색한다’는 취지 아래 의기투합했고, 사회학겧??경제학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한국과 일본의 학자 18명과 함께 ‘한일, 연대21’이라는 모임을 발족했다. 이 책은 ‘한일, 연대21’의 첫 출판 성과물로 양국의 민족주의 연구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책에 따르면, 기존의 민족주의는 반일과 혐한(嫌韓)으로 포장된 한일간의 대립구도를 유지시켜왔다. 그러나 두 민족주의의 대립구도 속에서도 한국 소설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한 일류(日流)와 일본을 강타한 한류(韓流)는, 서로에 대한 비난과 긍정이 공존하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민족주의를 보여준다. 책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양국의 민족주의를 서로를 향한 비난의 대상이 아닌 ‘자기비판’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결국 ‘한일, 연대21의 시도’는 자성의 자세를 통해 양국의 새로운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다.

김철 교수(연세대겚뭬齋뭐?逵?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에 관해 “과거는 잊고, 사람은 용서하지 않는 길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한국 국사교과서에 씌어져 있는 일제의 조선 토지 40% 수탈설이 좋은 예다. 이처럼 사실관계에 기초하지 않은 근거 없는 수치는 피해국의 분노만 키울 뿐이다. 김 교수는 단죄의 시선으로는 결코 과거사를 청산 할 수도, 민족정기를 회복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책은 우리에게 한일간의 과거 극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사죄를 받고 용서하는 ‘조건부 교환논리’가 아니라, 사죄를 성립시킬 수 있는 우리의 용서가 아닌지 질문한다.

책의 절반가량은 일본의 시각으로 채워져 있다. 한국에서도 큰 논란을 야기했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2001년 새 교과서 선정과정에서 0.039%의 점유율을 기록하는데 그쳐 실패했지만, 이들은 정작 그 원인에 대해 “매스컴을 동원해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한 일본 국내의 좌익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내외의 설득력 있는 비판이 선정 실패의 실질적 원인이라는 것을 외면한 것이다. 책은 이 교과서를 “현대 일본의 전쟁을 긍정하기 위해 역사 왜곡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교육기본법을 먼저 개악하고 헌법도 개악해서 ‘전쟁을 하는 나라’의 국민을 기르는 교과서”라고 표현한다.

그 외에도 이 책은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 『요코이야기』 등과 같이 한겴?양국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사안들을 차분하고 진지한 어조로 되돌아본다.

고모리 교수는 “자국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개인이 연대하지 않고서는 21세기 한일관계의 전망을 개선할 수 없다”면서도 양국의 민족주의를 향한 내적인 비판이 상대국의 반일, 혐한의 논리를 부추길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실제로 박유하 교수는 한국의 왜곡된 반일민족주의를 비판한 저작이 일본의 반한 민족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할 위험성을 느끼고 일본에서의 번역출판을 중지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한일 양국의 꼬인 매듭은 규탄의 방식으로만 이야기 돼왔다. 때문에 책을 이끌어 나가는 ‘철저히 학술적인’ 민족주의 논의는 더욱 빛난다. 그러나 18편의 글을 다 읽고 난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올바른 방향설정이 힘들다는 점은 아쉽다. 총론격의 글이나 모임 전체를 대변하는  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희구는 익숙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자성을 통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독자들에게 마지막 역할로서 주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개별적인 소동들에 격분하는 것으로 애국심에 대한 의무감을 채워나가기보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의 민족주의를 되돌아보고 재정립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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