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과 법률사무소 김앤장, 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대한민국 사회에 ‘지식 정보 사회’라는 구호가 울려퍼진 지 오래건만, 정작 사람들이 목마르게 필요로하는 정보와 그들에게 주어지는 정보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다. 후자는 ‘제도권’이라고 불리는 지식 산업의 구조로 결정된다. 전자는 일하고 애 키우고 늙어가며 등뼈 휘어가는 가운데에 이건 정말로 아니라고 느껴질 때에, 그래서 분명히 이게 맞는지 틀렸는지 판단해야만 할 때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이다. 따지고 보면, 이 두 집단은 원래부터 따로 놀게 되어 있다.

제도권의 지식생산구조
‘제도권’에 해당하는 지식 생산자들은 크게 3종 내지 4종이 있다. 정치가 및 관료, 대학 교수, 저널리스트, 준(準 혹은 wannabe) 저널리스트다. 우선 첫째 그룹. 이들 모두는 좋은 대학을 나왔거나 아니더라도 그 후에 아주 험난한 지적 훈련의 장을 거치게 되어 있다. (그 과정을 낮잠과 룸살롱으로 때운 이들은 예외겠지만.) 그리고 그들은 국가라는 정보 수합 기구를 끼고 있기에 접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도 범위에 있어서나 질에 있어서나 대한민국 최고다. 하지만 그들이 내놓는 정보를 보면, 그것으로 우리가 알게 되는 양과 그들끼리의 담합에 의해서 가리고 내놓지 않는 정보의 양 중에서 어느 쪽이 많은지 심히 의심스럽다(후자는 우리가 계측할 수 없기에). 이 집단은 본래 수도꼭지를 닮았다. 이들은 승진 혹은 권력 확장이라는 자신들의 목적에 비추어 어느 정도의 정보를 흘리고 어느 정도는 잠가야 하는지를 재어 그것을 통제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너무 폭로가 부족하다 싶으면 좀 더 흘리고 반대면 잠그고 하는 식이다. 그래서 거기에 따라 우리들이 끓어올랐다 식어버렸다를 반복하게 만들고, 그 틈에 권력과 자리를 유지하고 확장한다. 뒤편에서는 “무지렁이들의 냄비 근성”을 자기들끼리 또 비웃으면서.

대학 교수들은 모범생이다. 누군가가 시키는 것을 읽고 그(녀)가 시키는 것을 쓰고 하는 일을 업으로 살았고 거기에서 뛰어남을 인정받은 이들이다. 물론 공간과 사람과 교재는 바뀐다. 교수님이 읽으라고 하는 학부 수업 교재와 리포트, 얼굴없는 음성이 시키는 TOFEL/GRE의 점찍기, 캐임브리지와 하버드의 누구누구가 가르쳐주는 이런 책 저런 논문. 이들은 교수가 되어 지금도 계속 읽고 생각하고 쓰지만, 그들의 목적은 유명 저널에 글을 싣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 학계의 관심에 부합하는 문제를 오늘도 읽고 생각하고 쓰기에 바쁘고, 그것 아니면 읽지도 생각하지도 쓰지도 않는다. 지금 여기에서 터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제반 모순의 해명이 그들의 ‘직업적’ 관심사가 될 필연성은 없다.

20세기 초 펄펄뛰던 뉴욕에는 ‘탐사 전문 언론인(investigative journalist)’이라는 직종이 번성하였다. 이들은 될 만한 이야기를 물어와야 단돈 10만원이나마 얻어 빵을 살 수 있었기에 쓰레기통의 메모 조각까지 별걸 다 뒤졌다. (지금도 미국과 영국에는 몇 명 남아있다고 한다. 역전의 용사들의 뒷얘기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영화 「트루 크라임」을 참조하시길.) 하지만 한국의 언론 지형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다. 두어 개 메이저 일간지 기자들은 연봉이 세므로 그런 3D 업종에 종사할 필요가 없다. 마이너 언론의 기자들은 한정된 인원으로 넓은 지면을 메워야 하기에 과도한 혹사 상태에 처하는 바람에 그럴 시간도, 그럴만한 문제의식을 가지는 데에 필요한 독서 시간도 가질 수 없다. 이렇게 기자들이 지쳐가는 가운데에 그 사이로 새어나가는 이야기들을 모아 떠들고 또 떠드는 소위 ‘인터넷 논객’이라는 이들이 산다. 하지만 이들도 운때만 잘 맞추면 대통령 연설문을 감수할 위치에 서기도 하고 또 그래서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받기도 한다.

 8년에 걸친 론스타와의 1인 전투
그런데 이런 사람도 있다. 대학을 나와 어느 카드회사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어느 외국 사모펀드의 장난으로 졸지에 직장을 잃었다. 그 사모펀드는 ‘론스타’였고 그것이 가져간 자산은 ‘외환은행’이었다. 국회의원도 대학교수도 변호사도 기자도 아닌 그는 그때부터 장장 8년에 걸쳐 론스타와의 1인 전투를 시작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싸우려는 상대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짱짱한 변호사들을 잔뜩 갖춘 세계 굴지의 금융 세력임을. 그래서 그는 자료와 자료와 자료를 거치고 거쳤다. 그러면서 그는 기자를 만났고 변호사를 만났고 교수를 만났고 국회의원을 만났다. 그는 되레 그들을 가르쳐야만 했다. 그의 노력이 큰 힘이 되어, 얼마 전 드디어 한국의 법정에서 론스타 한국 지부가 주가조작을 했음을 확인하였다. 지난 몇 년간 전 세계를 거칠 것 없이 휩쓸던 ‘사모펀드’가 한반도 남단에 와서 큰코 다치는 순간이었다. 그의 이름은 『법률사무소 김앤장』의 필자 중 한명인 장화식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그리고 그와 함께 뭉친 이들은 알게 되었다. 이 땅의 사법 권력과 기업 권력과 외국 자본과 그와 결탁하는 관료 권력이 얼마나 또아리 또아리 뭉친 한 덩어리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정치가, 교수, 기자 등이 왜 체계적으로 함구하는지. ‘삼지모(삼성을지켜보는모임)’인지 하는 곳을 보라. 그곳의 시민 운동가, 학자, 무어무어 하는 명망가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던가. 제도적으로 발언권이 보장된 머리좋은 사람들을 모아놓아 봤자 정작 삼성에 관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정보가 생산되었는가.

레지 드브레(Régis Debray)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20세기가 시작할 때에는 에밀 졸라 같은 지식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또 그것과 관련된 자료와 사실을 꼼꼼히 뒤질 줄 아는 이들이었다. 20세기 중반에는 사르트르 같은 이들이 지식인으로 행세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답답해하는 것을 온갖 고답적 담론으로 바꾸어놓고 중간 과정은 아무도 모르게한 채 결론만 거창하게 꺼내 사람들을 몰고 다니며 신처럼 군림했다. 20세기 끝무렵에는 ‘최후의 지식인’들이 남았다. 그들은 사람들의 상황도 알기를 거부하고(혹은 경멸하고), 그러면서 사람들을 몰고 다니고 싶어하지도 않으며(피곤하니까), 자료와 사실을 꼼꼼히 뒤지는 노력은 질색인 사람들이다(할 줄도 모르니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TV와 매체의 휘광 그리고 명성뿐.”

옹골찬 지식인이라면 “보통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을 시작으로 삼고, “자료와 사실을 꼼꼼히 뒤지는 것”을 방법으로 삼고, 그러한 준비를 기초로 하여 모두 다함께 솔직하게 풀어가는 집단적 토론을 결론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거대 로펌 김앤장의 기형적 구조를 말하는 『법률사무소 김앤장』과 삼성왕국에 맞서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삼성공화국의 게릴라들』 은 그러한 방향에 있어서 중요한 모범이 되는 책들이라고 생각한다. 

홍기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관련 서적

법률사무소 김앤장
장화식·임종인 지음┃후마니타스┃272쪽┃1만2천원 

한국 경제를 주무르는 국내재벌은 물론,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해외투자자본까지도 한국에서 법적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곳의 문을 두드린다. 삼성 애버랜드 전환사채(CB) 불법 매각 때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 과징금 불복 소송 때도,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과 주가조작 의혹 때도 일관적으로 ‘가진 자’의 방패가 돼 준 곳. 바로 법률사무소 김앤장이다.

저자인 장화식(론스타게이트의혹규명국민행동 집행위원장)과 임종인(국회의원)은 “김앤장은 기본적으로 법률사무소지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이미 일반적인 법률사무소를 넘어 한국사회의 ‘권력집단’으로 우뚝 서 있다”고 주장한다. 김앤장이 해온 법률 활동은 ‘정의 구현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단지 ‘거대자본과 유착된 사업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책은 최소한의 윤리와 공공성까지도 무너져 가고 있는 시대와 그 시대를 이끌고 있는 사회 권력계층을 고발하고, 재판정보 미공개 원칙, 로비스트법 부재 등 김앤장과 같은 집단을 존속할 수 있게 하는 법률적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프레시안」 엮음┃프레시안북┃336쪽┃1만2천원

1946년, 미국이라는 ‘거대 권력 집단’과 인구 3천만에 불과한 작은 국가 베트남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미국은 최첨단 무기와 국제사회의 제재를 이용해 공격했고, 작은 나라 베트남은 ‘게릴라’ 전법을 이용해 미국의 맹점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미국은 마침내, 베트남 게릴라들의 ‘약하지만 아픈, 그리고 끊임없는’ 공격에 백기를 들고 물러갔다.

책은 한국 최고의 권력집단 삼성왕국을 공격하고 있는 게릴라들을 소개한다. 삼성의 각종 로비와 불법행위를 폭로한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 비자금 사건을 터뜨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국민의 알권리를 삼성에 파는 언론계를 고발한 이상호 기자 등은 꾸준한 게릴라 전법으로 삼성의 치부를 공략하고 있다. 시민 지향적 독립 언론을 추구하는 「프레시안」 기자들이 그들의 기사와 인터뷰를 모아 발간한 것이 이 책이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물러간 후에도 전쟁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왕국이 잘못을 인정하고 불법의 세계에서 조용히 물러날지는 두고볼 일인 것이다.

강진규 기자 iniesta@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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