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을 “표트르 대제의 부활”이라고 일컫는 푸틴의 전기가 출간됐다. 표트르보다는 푸틴이 친숙한 우리로서는 ‘18세기 초의 이 대제가 러시아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최근 번역·출간된 제임스 크라크라프트(James Cracraft, 미국 일리노이대·역사학과)의 『표트르 대제』는 이런 호기심을 품은 일반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듯하다.

크라크라프트가 30여 년간의 연구 성과를 일반인 대상의 개론서로 축약한 『표트르 대제』는 전기가 아니라 역사서다. 표트르의 개인사를 다루는 것은 1장뿐인데 그마저도 대부분이 그가 성장과정에서 만난 참모진의 다양성을 설명하기 위해 할애된다. 이어 책은 ‘군제혁명’, ‘외교혁명과 관제혁명’, ‘문화혁명’, ‘혁명과 저항’,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을 주제로 표트르의 개혁을 조명한다.

저자가 러시아사를 통틀어 가장 독보적인 인물이라고 강조하는 표트르 대제는 한국의 사회 교과서에서는 ‘18세기 초의 계몽 전제군주’로 간략하게 언급된다. 하지만 표트르는 ‘러시아 근대화를 추진한 개혁가’와 ‘농노제를 존치시킨 폭군’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공존하는 다면적인 인물이다. 책은 이런 복잡성을 의식하면서도 표트르 대제의 개혁성에 초점을 맞춰 그의 시대를 재해석한다.

책은 표트르가 가져온 정치·사회·경제적 근대화보다도 개혁의 ‘문화혁명적 특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표트르 치세의 러시아가 비록 지리적·역사적으로는 아시아적이었으나 문화적으로는 유럽화로 완전히 방향을 전환했다고 말한다. 표트르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후진적 모스크바’와 차별화되는 도시경관을 통해 유럽을 지향한 표트르의 지리적 비전을 보여준다. 후진국이던 러시아는 이 같은 대대적 개혁을 통해 ‘선진적’ 유럽으로 편입될 수 있었고, 이후 유럽사와 세계사의 핵심적 일원으로 성장한다.

저자는 전기가 아니라 역사서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저자가 묘사하는 표트르 혁명의 면면을 따라가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독자는 러시아를 바꾼 표트르 대제 개인의 역량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된다. 러시아사의 거인 표트르를 벗삼아 거대하게만 보이는 서양 근대사의 한 줄기를 헤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표트르 대제

제임스 크라크라프트 지음┃이주엽 옮김┃살림┃259쪽┃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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