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은 일본말로 하되 쓰기는 조선글로 썼다.” 「배따라기」의 작가 김동인의 고백이다. 그의 고백은 한국근대문학의 고단한 처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생각을 인형으로 대신 말하는 복화술사(腹話術師). 식민지 시대 근대작가는 복화술사와 같았다.

식민지 시대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시대상황을 살펴보는 『복화술사들』이 출간됐다. 저자인 김철 교수(연세대․국어국문학과)는 그동안 국어의 절대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민족주의적 담론을 비판해왔다. 『복화술사들』도 이 주장의 연속선상에 있다. 책은 식민지 시대 한국어의 위상을 서술한 후 일본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고뇌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애국가를 작사한 윤치호는 “한국어는 어휘가 풍부하지 않아서 말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표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1883년부터 60년 동안 한문, 한글, 영어, 일본어를 섞어 일기를 썼다. 『윤치호 일기』는 일제강점기에 한문이 언어적 지배력을 상실하자 그 권력의 공백을 차지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들이 경합했음을 보여준다. ‘한국어=한국의 국어, 한글=한국의 문자’라는 현재의 당연한 인식은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됐을 뿐이다.

식민지 시대 근대작가는 복화술사(腹話術師) 같지만, 실은 복화술사(複話術師)다. 최초로 일본어 소설을 쓴 장혁주는 “민중의 비참한 생활을 널리 세계에 알리고 싶어서”라며 창작동기를 밝힌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일본어로 외칠수록 그는 자신의 형제로부터 멀어졌고 일본 문단은 엑조티시즘(exoticism, 이국풍) 이상의 진지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적의 칼날을 잡고 적을 베어 넘기는 것처럼 제국의 언어로 그들에 대항했다. 그는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자, 두 개의 혀를 가진 자였다.

식민지 시대에서 오로지 하나의 언어만을 말하는 자, 모국어의 자연성 논리 속에만 갇혀 사는 자에게 제국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다른 생각을 시도하는 자에게 비로소 전복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말한다. 저자 또한 현대의 복화술사로서 우리 사회의 자기동일성에 비수를 꽂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복화술사들 김철 지음┃문학과지성사┃138쪽┃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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