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잉크가 첫인상을 좌우한다

▲ © 강정호 기자

기획과 집필, 편집과 디자인 등을 거친 원고는 인쇄를 통해 비로소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다. 인쇄를 단지 책을 찍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쇄에 사용되는 종이와 잉크의 종류, 인쇄 품질에 따라 책의 첫인상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책의 내용과 성격을 표현하는 데 인쇄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요즘 독자들은 책을 단지 읽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하나의 소장품으로 인식하면서 종이의 질감이나 색감 등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인쇄는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책이 소장품으로 인식되면서 인쇄의 중요성 높아져

 

인쇄에는 볼록판, 오목판, 실크스크린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있지만 대량 인쇄가 쉽고 정교한 오프셋 인쇄 방식이 전체 인쇄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오프셋 방식이란 인쇄할 사진과 글씨를 파랑, 빨강, 노랑, 검정으로 분해해서 필름으로 옮기고 철판에 소부(판박이)해 출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프린팅이 끝난 뒤에는 금박이나 실크 입히기, 비닐코팅, 재단 등 제본 직전까지의 과정이 인쇄소에서 처리된다. 

 

편집과정에 인쇄 전문가 참여해야 

 

인쇄 과정에서 필름을 한 번 찍는 것을 ‘판’이라 하고, 출간 횟수를 ‘쇄’라고 한다. 즉 1판 내용을 수정해서 필름을 다시 만들면 2판이 되며 내용 수정 없이 물량만 더하기 위해 찍어낼 때는 1판 2쇄가 된다.

인쇄가 끝난 종이들은 제본소로 넘어가게 된다. 제본소에서는 인쇄된 종이를 차례로 정리, 견본책을 만들고 견본책에 대한 검사가 끝나면 절단, 접기, 실매기(양장)․철사꿰기(중철), 표지싸기를 거쳐 책이 완성된다. 

 

한편 90년대부터 인쇄 과정에 컴퓨터와 IT기술이 도입돼 과거 편집자와 인쇄사의 영역이었던 편집이나 디자인 등이 시각디자이너와 컴퓨터 기술자들에게 넘어가면서 인쇄업 전반이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출판시장의 불황과 함께 인쇄업도 사양사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산업자원부와 한국생산성본부가 발표한 ‘2003년 2분기 노동생산성 동향’에 따르면 출판․인쇄업은 10.2%의 산업생산률을 기록해 이전 분기에 비해 생산률이 크게 하락했다. 경쟁력이 약화되면 산업이 영세해지고 품질 투자가 어려워져 경쟁력이 더욱 약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인쇄업의 어려움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인쇄연구소’ 홍우동 소장은 “인쇄는 문화․지식산업”이라고 강조하며 “품질에 대한 노력과 함께 향 인쇄물, 소리나는 인쇄물 등 특수인쇄의 개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업계 스스로의 자구 노력을 강조했다. 

 

인쇄 과정에서 기술적 측면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출판 과정과 연계가 잘 되지 않는 부분도 문제다. ‘삼성종합인쇄출판’ 이윤호 제작부장은 “기획단계에서 인쇄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내용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며 “편집과정에 인쇄 전문가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종이의 종류에 따라 인쇄 결과물의 ‘감’이 다르기 때문에 인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는 기획의도를 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계절’의 박찬수 차장은 “『한국 생활사 박물관』의 경우 인쇄 전문가가 편집회의부터 참여해 본문 중간에 펼쳐지는 페이지를 만들려는 기획 의도를 잘 살려냈다”며 “제작부 내에 인쇄 전문가를 두어 중간중간 견본책을 만들면서 편집과정을 진행하는 출판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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