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열 교수 사회대 사회학과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있다. 깨진 창문 하나를 방치하는 것이 파괴와 약탈을 재촉하고, 종국에는 거리를 부랑자와 폭력배의 소굴로 만든다는 이론이다. 역겨운 오줌냄새와 지저분한 낙서로 가득 찼던 1980년대 뉴욕의 지하철도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범죄의 온상이 된 지하철은 곧 뉴욕시 전체를 연간 60만 건의 범죄가 넘쳐나는 위험한 도시로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엉뚱하게도 뉴욕시 교통국에서 내린 처방은 지하철의 낙서를 지우는 일이었다.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6,000대나 되는 전동차의 낙서를 모두 지우는데 무려 5년이 걸렸다. 그러나 그 결과 지하철 범죄는 75%나 감소하였다. 1994년 취임한 줄리아니 시장은 대대적인 법질서지키기 캠페인을 벌였고, 뉴욕은 범죄도시의 오명을 벗어났다.

이명박 정부가 ‘무관용 원칙(zero-tolerance)’을 천명했다. ‘떼법’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검찰에서는 불법시위를 엄단하고, 시위 주동자에게는 민·형사상 책임을 동시에 묻겠다고 했다. 경찰도 엄정한 법질서 확립을 위해 공무집행 방해는 사안이 경미하더라도 관용하지 않고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화답했다. 9월부터 전경 대신 경찰관으로 구성된 체포전담 부대를 신설해 불법시위 현장 전면에 배치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서울시도 대대적인 기초질서 바로잡기를 위해 주·정차 위반이나 불법 노점상 같은 생활주변의 불법행위를 뿌리 뽑기로 하고 ‘서울특별시 치안협의회’를 발족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도 ‘무너진 심판의 권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20년, 성공적으로 권위주의를 타파한 한국사회는 지금 ‘권위 있는 심판의 실종’으로 고통 받고 있다. 민주적 권위의 원천은 국민의 신뢰다. 그런데 신뢰 받는 심판이 없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일련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권위의 실종’은 계속 악화일로에 있다. 그중에도 입법, 사법, 행정부에 대한 불신이 가장 심각하다.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입법부는 불신을 넘어 냉소의 대상이다. 한국 최대의 기업 삼성이 ‘조직적으로 국가기관의 통제를 무력화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 특검의 불평이고 보면, 행정부나 사법부의 권위도 말씀이 아니다. 국제투명성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부패인식도는 여전히 세계40위권에서 맴돌고 있다. OECD 최하 수준이다.

법질서는 사회간접자본이다. 경제 살리기의 토대도 법질서 준수에서 출발한다. 법질서 파괴에 따른 비용이 연간 64조원이라는 연구도 나왔고, OECD국가의 평균 법질서 수준이라면 우리나라 GDP도 1%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근본 해법은 무너진 심판의 권위를 되찾는 일이고 그 핵심은 공정성이다. 공직자의 부패나 대기업의 불법에는 눈감고 비정규직 노동자나 갈 곳 없는 노점상만 다그치는 법질서 확립이라면 문제가 있다. 국민적인 야유를 받는 인물로 장관후보를 내세우는 무감각으로도 곤란하다. 무관용 원칙을 제대로 지키려면 높은 도덕성이 먼저 심판에게 요구된다. 그래서 청렴한 정부가 되기 위한 획기적 대책이 빠진 ‘법치주의 선언’이 영 미덥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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