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할2푼5리 승률로 사는 이들을 위해

 

▲ © 김응창 기자

“『대학신문』 발행 부수가 이백 삼십 부라도 상관없구요. ‘서울대’ 학부생, 교수가 보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게다가 문학, 삶 이야기를 심도있게 라니… 그냥 맥주나 한 잔 하자구요.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하는 거… 병입니다. 그냥 놀러 간다는 생각으로 오세요.^^”

 

다소 형식적이었던 인터뷰 요청서를 살짝 비틀어주는 문체가 기분 나쁘지 않다. 답장을 받고 난 후 기대감은 두 배가 됐다. 만화 같기도 하고, 어쩌면 만담이나 한 편의 개그 같기도 했던 그의 작품을 읽으며 흘렸던 웃음이 입가에 다시 살아난다.

 

박민규씨는 스스로 “편안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깨를 덮는 그의 긴 머리를 보고 메탈 가수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목소리는 웬만한 라디오 디제이 뺨칠 만큼 감미롭다. 착 달라붙는 남색 트레이닝복 아래 받쳐입은 군복 바지. 앙증맞게 사선으로 걸친 숄더백. 문단의 작가 중에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그는 햇살 비치던 어느 날 아내와 함께 마늘을 까면서 일생 최대의 행복을 느꼈다는 사람,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자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두 권의 단행본 모두 문학상 수상

 

어릴 때부터 학교 가기가 싫었다는 이 작가. 물론 커서도 싫은 건 마찬가지였고, 컨닝을 해 대학에 합격했지만 여전히 학교 가기가 싫었단다. 그에게 학교는 젊음을 옥죄는 틀이자 즐거움 없는 세계 그 자체였다. 자세한 내용은 쓰지 않겠다는 기자의 약속을 받아내며 그는 방황하고 반항했던 경험담도 들려준다. “대가리에 피가 안 말라 견딜 수가 없었나봐요. 어디 가서 정말 피를 쏟아야 마음이 안정됐던 것도 같고….”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후 그는 문학과 담을 쌓고 살았지만 “어느날 문득 소설이 쓰고 싶어지더라”고 했다.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던 헤비급 타이틀매치를 보면서 문득 세계의 귀라도 물어뜯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어쨌건 그는 이 때문에 8년 동안의 직장 생활도 그만뒀다. “먹고 살 걱정도 해야 하는데 스스로 삼천포로 빠진 거죠. 그런데 진짜 인생은 어쩌면 삼천포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정말로 한 달 동안 민박집을 전전하며 삼천포에서 첫 작품을 탈고했다.

 

그는 ‘정상적인 것’, ‘중심’, ‘권력’을 믿지 않는다. 『지구 영웅 전설』에서 이런 그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즐겁지 않은 세계에서 즐겁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향해 썼다’는 이 소설로 그는 제8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만화같은 형식을 빌어 그는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 미국이 창조한 지구 영웅들의 활약상을 뒤집어 본다. 이를 통해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 이면에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지, 세계문화를 조정하는 자본주의는 어떤 속성을 갖고 있는지 질문한다.

 

‘하잘 것 없는 인생’향한 응원가

 

그가 처음 쓴 작품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2003년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단지 프로야구 원년 팀 ‘삼미 슈퍼스타즈’에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 팬클럽일 뿐 스스로 슈퍼스타일 수는 없는 ‘하잘 것 없는 인생’에 대한 응원이라 할 수 있다. 그는 “1할2푼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지면 어때?’ ‘실패하면 어때?’라고 독자에게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일등만을 기억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취재 과정에서 느꼈다”고 전한다. ‘삼미 슈퍼스타즈’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현대 유니콘스’나 KBO 문을 두드렸지만 이들은 꼴지의 불명예는 기억하지 않았다고 한다. 「딴지일보」에서 어렵게 구한 당시 신문 필름, 알음알음 알게 된 야구팬들과의 인터뷰에서 얻은 정보를 상상과 엮어 작품을 완성했던 것이다.

 

그는 앞으로 “진심으로 독자의 마음에 다가가 독자가 마음으로 반응할 수 있는 글을 쓰겠다”고 한다. 작가를 의사에 비유하며 “언젠가 박상륭처럼 연구의가 되고 싶지만 지금은 이외수 같이 인지도 높은 개업의가 되려고 노력 중”이라는 그가 앞으로 어떤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그는 인터뷰가 끝난 후 한 번 더 기자를 의아하게 만든다. 사진촬영에 사용할 소품과 컨셉을 미리 정해온 것이다. 선글라스와 함께 준비한 원숭이 상을 숄더백에서 꺼내며 왈. “『혹성탈출』에 나오는 이 캐릭터가 왠지 서울대에 어울리는 것 같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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