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수) 저녁 8시, 부안 읍내에는 어둠과 침묵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른 시각임에도 대부분의 상점들은 불이 꺼진 상태다. 철모를 쓰고 방패와 진압봉을 든 검은 옷의 전경들이 대로를 따라 끝없이 늘어서 있다. 도로에는 차가 없고 인도에는 사람이 없다.“부안은 이제 귀신 사는 동네여”전경들을 피해 골목길로 빠지며 한 주민이 말한다.  

 


수협 앞, 터미널로 이르는 도로에는 8000여명의 전경들이  배치되어 있다. 대로뿐 아니라 골목에도 모퉁이마다 4∼5명의 전경들과 각목을 든 사복경찰들이 서 있다. 주민들은 폭이 3m남짓한 좁은 골목길을 전경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빳빳이 긴장하여 걸어간다. 몇몇 주민은“주민 3명만 모이면 해산시킨다. 이것이 민주국가냐. 1980년의 광주가 재현된 것 같다”고 수군댄다.

 

7시만 되면 텅비는 거리
골목길에도 전경 배치


수협 앞 천막에서 14일째 단식기도 중인 문규현 신부는 4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전경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지난 달 19일 전경 방패에 맞아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한 할아버지는 “평화적으로 촛불 시위할 때는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고  바보 취급하더니, 이제는 경찰한테 맞는 우리를 폭도 로 몰아간다. 바보취급보다는 폭도취급이 낫다”며 흥분한다.

 


부안 성모병원에는 지금까지 시위 도중 다친 320여 명의 주민들이 치료를 받았고, 26일 현재 34명의 환자가 입원 중이다. 부안 성모병원 기획실장 김종균씨는 “시위가 극렬했던 19일, 병원은 완전 전쟁터였다”며 “60대 노인이 뇌출혈을 일으켜 실려오기도 했고, 한 아주머니는 머리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왔으며, 골절상을 입은 고등학생 등 중상 환자도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후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변을 당했다는 박민자씨(46)는 머리가 찢어져 16바늘을 꿰맸다. 박씨는“시위 끝나고 흩어져서 인도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전경이 확 몰아쳐 방패로 남편을 찍고, 파이프로 내 머리를 쳤다. 우린 무기도 없었고, 시위대도 아니었는데 무차별적으로 가격하더라”고 말했다. 

부안군수, 협박성 인사 조치
군청 공무원 반발 조짐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도 크다. 지난 달 17일 시위에서 코뼈가 부러져 치료를 받고 있는 최동화씨(42, 농업)는 “요즘 10번도 넘게 신문사,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했지만 내가 한 말이 제대로 나온 꼴을 못 봤다”며 기자들에게 “제발 빼지도, 붙이지도 말고 그대로만 내보내라”고 말했다. 전경에게 집단구타 당해 요추와 머리를 다친 노인환씨(51)는“우리가 때리면 폭력이고 전경들이 때리면 질서회복이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핵폐기장 건설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규장씨(농업)는 "일부 군청  의원들과 핵폐기장 유치에 대한 보상이 나오면 한몫 잡아보려는 건설업자들은 찬성하고 있다"며 "하지만 부안에서 뿌리박고 사는 진짜배기 주민들은 부자든 아니든 모두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한 주민은 "처음에는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이 위도를 돌아다니며 핵폐기장을 유치하면 주민당 2∼3억씩 현금 보상을 해준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며 "선박 빚에 쪼들리던 위도 사람들 중 거기에 안 넘어가는 사람이 있겠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현금보상설이 거짓임이 판명되자 위도 사람들도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실제 부안 성당 게시판에 부착된 '핵폐기장반대운동' 기부금 내역서에는 '위도주민일동'의 이름으로 50여만원이 표기되어 있었다.

 


부안 군민들은 핵폐기장 건설과 관련해 독단적 결정을 한 군수와 일관성 없는 정부를 거세게 비난한다. 최동호씨(43, 자동차판매영업원)는“9월부터 행자부장관, 고건 총리 등 많은 정부 관료들이 부안에 찾아와, 이런저런 약속들을 해놓고는 서울에 가면 항상 그 약속을 뒤집는 기자회견을 하더라”며 “부안 주민들이 어찌 정부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김종균 부안군수가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하게된 배경에 의혹을 제기하는 주민도 많았다. 박민자씨(46)는“군수가 처음에는 군민들에게 절대 그런 것(핵폐기장) 유치 안 한다더니 전북도지사와 만나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그 다음날 유치 신청 기자회견을 하더라.”며 “군 의회에서도 7:5로 부결됐는데도 독단적으로 유치를 강행한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또 한 주민은“군수는 갑작스레 말을 바꿔 핵폐기장 유치를 강행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안군청 공무원들도 집단 행동에 나설 조짐이다. 어렵사리 취재에 응한 군청 직원 신모씨(가명)는“군청 공무원들 대다수는 핵폐기장 건설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군수의 보복인사조치가 두려워 아직 표현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신씨는“지난주에는 촛불집회에 몰래 참가하던 부안군청 공무원 하나가 남원 묘지관리소로 좌천됐고, 오늘 또 8급 계장 한 명이 언론과 핵폐기장을 반대한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대기발령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신씨는 “군청 공무원 사이에서는 이러한 보복인사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며 “다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아직은 입 다물고 있지만 군 공무원들의 반대 움직임도 곧 표면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는 이전의 강경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밝혔으나 부안주민들은 “핵이 설사 보약이라 해도 정부는 이제 부안 군민을 설득할 기회를 놓쳤다”며 정부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죽기 아니면 살기”라며 핏대를 세우는 부안 주민들. 그들은 막다른 골목에 있었다. 

 

글:  변진경 기자
사진: 김응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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