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시장이 있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시장을 탈역사적 산물로 간주한다. ‘시장의 우선성’ 가정을 바탕으로 모든 경제행위를 시장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다. 반면 제도경제학은 시장은 생물의 기관처럼 자연선택돼 태어난 제도의 하나로 보고, 수요-공급 곡선 뒤에 숨어 있는 다양한 제도에 주목한다. 그들은 제도가 어떻게 구성되고 이루어지는가에 집중해 현실 경제를 연구한다. 때문에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하나의 자본주의 형태를 상정하는 반면 제도경제학은 제도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자본주의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임배근 교수(동국대·경상학부)는 “주류경제학은 시장이라는 한 분야에만 집중하지만 제도경제학은 시장을 포함한 모든 제도를 통해 포괄적으로 경제를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제도경제학은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신고전학파 경제학를 비판, 보완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구제도경제학은 제도경제학의 기초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경제를 분석할 때 가격기구뿐만 아니라 법률, 관습 등 제도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신고전학파에 대해 “제도가 변해가는 진화과정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경제학은 진화론적 과학”이라고 주장했다. 경제를 정태적·기계적 체계로 파악하기보다 동태적·유기적 존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는 미시적 입장에서 제도의 기원을 분석하는 신제도경제학이 등장했다. 이들은 “완전경쟁시장에서 완벽한 합리성을 가지고 완전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개인은 굳이 기업을 만들 필요가 없다”며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기업의 존재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올리버 월리엄슨(Oliver Williamson)은 제한된 합리성과 자산의 특수성 개념을 로날드 코즈(Ronald Coase)의 거래비용 개념과 결합해 경제조직을 설명한다. 유동운 교수(부경대·경제학부)는 “인간의 합리성은 제한적이어서 거래비용이 발생하며, 거래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기업이 만들어지고 계약을 지배하는 구조도 달라진다”며 그의 이론을 설명했다. 예를 들어 건설업자와 목수가 한 번만 함께 일한다면 한 번의 계약서만 작성하면 된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 같이 일할 경우 계약을 반복해서 체결해야 하므로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 그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장기적인 조직적 관계 즉,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제도경제학은 국가 간 제도를 비교하는 경험적 연구방법을 취해 통일된 이론체계가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경험적 연구방법을 통해 제도와 관련된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주의 경제학자인 장하준 교수(케임브리지대·경제학과)는 『국가의 역할』,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제도경제학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는 궁극적으로 시장과 그 외의 다른 제도들 간의 상호관계를 균형 있게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그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도주의적 접근은 사회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유독 경제학에서는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양준호 교수(인천대·경제학과)는 “유럽의 경우 신고전학파 경제학과 함께 제도경제학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류경제학에 가려 아직도 그 논의가 미약하다”며 “제도경제학의 비시장적 요소를 통해 주류 경제학의 맹점을 지적하고 부동산 투기, 족벌경영 등 현실의 문제점을 비판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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