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박사과정 학생들은 「경제학의 문호개방을 위한 성명서」를 발표해, “주류경제학 외의 대안적인 시각도 대학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일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케인즈(John M. Keynes)를 배출한 케임브리지대가 전통적으로 ‘이단적’ 경제학의 본산을 자처해왔던 곳이기 때문이다. 칼레츠키, 스라파, 로빈슨 등의 걸출한 비주류 경제학자들도 ‘케임브리지 학파(Cambridge School)’라는 이름 아래 활약했고,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Post-Keynesian Economics)과 스라피언 경제학(Sraffian Economics)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경제학사에서 케인즈의 이름을 계승한 학파는 많다. 사무엘슨 등의 ‘신고전학파종합케인지언(Neoclassical Synthesis Keynesian)’, 맨큐·스티글리츠의 ‘새케인지언(New Keynesian)’ 등은 모두 케인즈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각각 다르게 해석하며 출발한다. 하지만 정작 포스트케인지언 학파는 케인즈의 계승자를 자처한 이들을 모두 ‘신고전학파’로 규정한다.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은 “케인즈가 문제를 제기한 것은 주류경제학의 근저에 있는 사고방식 자체”라며 “‘케인즈혁명’의 의미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기반에는 절대적인 연역논리를 요구하는 ‘환원론·이원론적 사고방식’과, ‘항상 경제는 균형을 향한다’는 결정론에 근거한 ‘기계적 시간’의 개념이 존재한다.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은 ‘미래는 현재의 선택에 따라 변하므로 안정적 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사적 시간’ 개념을 경제에 도입해 “경제의 이행경로 자체가 최종균형상태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공급은 수요에 순응한다”는 케인즈의 ‘유효수요(effective demand)’의 원리가 단기뿐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도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파의 특징이다.

스라피언 경제학은 ‘거시경제 쟁점에서의 모형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포스트케인지언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신고전학파 이론의 내부구조 비판에 주력한다’는 특징 때문에 별개의 경제학 분파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스라피언 경제학은 1920년대 학계를 지배하던 마셜경제학의 결정적 모순을 지적하며 등장한 천재 경제학자 스라파(Piero Sraffa)를 계승한 학파다. 1960년대의 ‘자본논쟁’에서 스라파는 “‘수요와 공급의 교차점에서 가격과 양이 동시에 결정된다’는 신고전학파의 한계주의 접근법은 경제를 너무 단순하게 여기는 것”이라며 “생산수단이자 생산품인 자본의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이 접근법의 전제인 “우하향하는 자본의 수요함수를 만들어내는 ‘생산과 소비에서의 대체’ 현상은 현실에서 발생하기 어렵다”며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스라파는 ‘대체되는 것들의 희소성’에 근거한 ‘교환’의 개념보다는 ‘경제의 규모를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라는 ‘생산’의 개념에 초점을 맞춰, 경제를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잉여(surplus)’를 분석하는 접근법, 리카도로부터 내려오는 고전학파의 ‘잉여접근법’을 부활시켜 대안으로 제시했다.

스라파의 이론을 계승한 스라피언 경제학자들은 경제학 전반에서 신고전파를 대체할 유의미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스티드먼(I.Steedman)은 스라파의 주장처럼 자본을 ‘이질적인 자본재들의 집합’이라고 이해할 때 주류경제학 국제무역이론의 ‘헥셔-올린-사무엘슨 모형’이 낙관하는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항상 교역당사국 모두에 이득이 발생한다’는 명제가 틀릴 수 있음을 지적한다. 또 스라피언 경제학자들은 ‘공급과잉된 상품을 처분하는 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주류경제학자들의 비현실적 가정을 공격하며 이들이 간과하는 ‘환경문제’를 스라피언 경제학의 이론체계 안에 포함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박만섭 교수(고려대·경제학과)는 “고전학파 경제학의 이론체계를 발굴해 주류경제학과는 그 기초가 전혀 다른 경제학을 성립시키려는 현대적 노력의 시발점이 됐다”며 스라피언 경제학의 의의를 평가했다.

포스트케인지언·스라피언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신고전학파보다 더 일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자신감은 그들이 주류경제학의 맹점을 지적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이를 대체할 체계적 대안을 제시했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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