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에서 역사·언어·문학까지

2010년 월드컵이 열리는 대륙,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유아두골(幼兒頭骨)이 출토돼 인류의 발상지로 불리는 대륙, 에이즈의 발생지로 추측되는 대륙, ‘오지’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대륙. 자극적이면서도 왠지 모를 매력이 느껴지는 이 수식어들이 한 단어로 집약된다면 그 단어는 오직 하나, 아프리카뿐이다.

◇왜 한국에서 아프리카를 연구하나?=세계 각국은 아프리카의 풍부한 자원 때문에 아프리카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는 나이지리아 남부 니제르 삼각주의 심해유전 지분 45%를 23억 달러에 인수했고, 지난해 5월 아프리카개발은행 연차총회에서 3년간 아프리카에 200억달러 규모의 지원을 약속했다. 인도 역시 오는 11월 ‘인도-아프리카 자원협력회의’를 주관하는 등 자원 확보를 위한 아프리카 진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 2006년 5월 국가정보원은 ‘아프리카 전문가 네트워크’를 창설해 한국기업의 아프리카 진출을 돕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광물자원 투자포럼’에서 남아공 정부는 칼라하리 망간광산 개발 프로젝트 등에 한국기업들이 적극 참여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남아공은 금매장량 세계 1위, 석탄매장량 세계 5위, 우라늄매장량 세계 5위 등 풍부하고 다양한 광물자원을 보유한 나라다.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장용규 교수(한국외대·아프리아어과)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자원외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며 “아프리카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와 한국이 많이 닮아 있다는 데서 연구의 의의를 찾는 목소리도 있다. 탈식민의 과제, 독재와 민주화의문제들, 지역 통합을 위한 노력 등 한국과 아프리카가 공유하는 부분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랍아프리카센터 심의섭 교수(명지대·경제학과)는 “아프리카는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다”며 “우리를 올바른 눈으로 보기 위해 남을 거울삼는 방식도 유효하다”고 아프리카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내 아프리카 지역학 연구 현황=국내 아프리카지역 연구는 생각보다 역사가 깊다.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는 1977년 출범했고 한국아프리카학회는 1986년 결성됐다. 이밖에도 아프리카문화연구소, 경상대 아프리카문제연구소, 명지대 아랍아프리카센터 등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초기에는 정치, 경제 등 현실과 밀접한 분야에 대한 연구가 많았다. 지난 2001년 아프리카 연합(AU)이 출범한 후 조부연 강사(한국외대·아프리카어과)는 2003년 「AU 출범이후 아프리카 통합과 우리의 대응방안」에서 “(당시)한국의 대아프리카 수출 비중이 라이베리아, 남아공, 나이지리아 등 소수국가에 편중돼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상남 교수(한국외대 외국학종합연구센터)는  불확실성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려는 사회문화,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일치성 등을 기업들이 아프리카에 진출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독특만 문화장벽으로 꼽기도 했다.
아프리카 경제, 자원개발 및 진출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아랍아프리카센터는 현재까지도 이러한 경상계열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심의섭 교수는 「아프리카에 대한 한국 초기(Korea Initiative) 전략」이라는 논문에서 한국의 발전경험을 공유할 것,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호이익을 목표로 할 것 등이 한국 정부의 현안과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연구는 최근 역사, 언어, 문학 등으로 그 연구 범위가 확장됐다. 아프리카연구소 박정경 연구원은 「아프리카 소설과 민속문학」에서 “아프리카 소설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다』는 서구 문학 전통에서 비롯된 소설이지만 속담, 민담, 민요 등 아프리카 민속문학이 관찰된다”며 “아프리카 고유의 역사와 문화, 전통에 대한 이해 없이 작품을 분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장용규 교수는 문화경제학적 관점에서 ‘악마’의 의미변화를 고찰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악마는 전통적으로 사회를 전복·파괴시키는 존재로 이해됐다. 하지만 산업화된 현대 아프리카 사회에서 악마는 특정인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해주는 존재로 이해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생기는 권력관계, 사회적 모순 등을 ‘악마적 행위’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연구가 나아가야 할 길=김광수 강사(언어학과)는 「아프리카 중심주의(Afrocentrism): 아프리카학의 새로운 연구방법론」이라는 논문에서 아프리카 연구의 패러다임 변화를 촉구했다. ‘아프리카 중심주의’란 아프리카 문명으로부터 획득한 아프리카 문화유산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김광수 강사는 이 개념을 도입한 연구 방법론이 “아프리카 역사, 문화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영목 교수(불어불문학과)는 “현재 국내의 아프리카 연구는 접근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연구 대상에 대해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는 연구나 사회적 편견을 불식시킬만한 연구 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 심의섭 교수는 아프리카 연구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에 대해 “아프리카를 무조건 미개하다고 여기거나 관광·눈요기의 대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현재 국내 아프리카 연구는 그 필요성과 오랜 역사에 비해 기반이 취약하다. 무엇보다 아프리카 지역 관련 연구소 자체가 부족할 뿐더러 이에 대한 재정적 지원도 미비하다. 지난해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가 학술진흥재단의 인문한국(HK) 사업에서 유망연구소로 선정돼 3년간 연 1억원씩을 지원받게 됐지만 다른 연구소들의 경우에는 지원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영목 교수는 “아프리카 연구소가 지원받는 액수도 전임 연구원 두 세 명의 연봉 정도일 뿐, 현지조사나 장기적인 연구를 수행하기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특정 주제에 관한 개별학자들의  연구만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있을 뿐 현지연구나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여 문화현상이나 사회현상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는 학제 연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외국에서 아프리카 관련 분야를 전공한 학자들이 국내에서 자리 잡기 힘든 점도 문제다. 대부분의 연구소들이 대학과 연계돼 있지만 아프리카 관련전공자가 연구활동을 하기에는 그 수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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