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쓴 글을 제가 읽으려니까 민망하네요.”

사회의 변두리를 담담히 보여주고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작가 공선옥을 지난 9일(금) 예술의전당 아르코예술정보관에서 만났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로 열리는 낭독회 ‘문학, 작가의 목소리로 남다’의 열 번째 강좌에 초청된 그는 문학평론가 이명원씨와 함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나눴다. 

공선옥 작가는 1991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단편 「씨앗불」로 등단했다. 흔히 페미니즘과 리얼리즘으로 설명되곤 하는 그의 문학은 외국인노동자, 농민, 이혼여성 등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보여준다. 이번 강좌에서 그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2002), 「남쪽 바다, 푸른 나라」(2005), 「명랑한 밤길」(2007) 등 세 작품을 낭독하고 진행자와 함께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멋진 한세상』에 수록된 단편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여성의 생존 문제와 함께 서민의 애환을 다룬다. 단편은 일리야 레핀(Ilya Repin)의 회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의 한국판 서사다. 아버지 없이도 화목했던 가정에 갑자기 들어온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오히려 이방인같이 느껴진다. 자식들의 성장과정에 늘 빠져있었기 때문에 가정에 온전히 합류하지 못하는 것이다. 경희는 남편에게 “우리 모두 당신을 기다렸어”라고 말하지만 일리야 레핀의 그림을 보며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고 낮게 읊조린다.  개인적 체험과 시대적 상황을 엮어 글을 썼다는 공선옥은 “가족의 부양을 책임지는 아버지는 가정 밖에서 주로 생활하기 때문에 소외돼 있다”며 “소외된 아버지의 모습과 가정을 돌보지 않는 가장에 대한 가족의 원망, 하소연을 동시에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소설에 나오는 가족의 모습은 우리가 겪는 일상 그대로다.
그의 리얼리즘은 현실 그 자체다. 「남쪽 바다, 푸른 나라」는 작가가 체험한 내용을 등장인물의 이름만 바꿔 별다른 소설적 장치 없이 그대로 쓴 것이라고 한다. 낭독 후 살짝 눈시울을 붉힌 그는 “쓸 때도 많이 울었다. 산문집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를 쓰면서 오지 마을을 돌아다녔는데 2002년 태풍 루사로 소설의 실제 배경인 거금도 지역 마을이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비극은 항상 주인공 영주같이 가난한 사람한테 닥친다”며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은 죄인처럼 살아가고, 그들은 인격도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마음은 「명랑한 밤길」에도 이어진다. 이제 막 간호조무사로 취직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21살 연이는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가난한 약자다. 순진한 시골 처녀는 노련한 ‘글쓰는 남자’에게 실연을 당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실연의 아픔을 자신보다 더 약한 외국인노동자에게 위로받는다. 공선옥씨는 “조국을 떠나 자기를 보호해주는 최소한의 법적·제도적 장치에서 벗어나 있는 외국인노동자는 약자라는 점에서 연이와 상통한다”며 “결국 위로는 또 다른 힘없는 사람에게 받을 수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목을 짓게 된 사연에 대해서도 말했다. 사실 연이가 걷는 ‘명랑한 밤길’은 실연의 상처가 넘치는 ‘슬픈 밤길’이다. 그는 “제목을 ‘슬픈 밤길’이라고 하면 연이가 더 슬퍼할까봐 덜 슬퍼했으면 하는 마음에 ‘명랑한 밤길’로 짓게 됐다”고 설명했다.

“슬픔 때문에 소설을 쓰게 되고, 간절한 마음으로 소설을 쓴다”는 공선옥씨는 오히려 슬픔을 긍정한다. 슬픔만이 슬픔을 위로해줄 뿐 기쁨은 결코 슬픔을 위로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양귀자 선배님의 『슬픔도 힘이 된다』처럼 슬픔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충분히 느낌으로써 슬픔을 메워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가난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난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난을 바라보는 시선이 덜 가난해졌으면 좋겠다”는 그는 이 말이 그토록 하고 싶어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설로만 들었던 그의 목소리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 시간이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