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기 교수 (인문대 서어서문학과)

작년 연말 전달받은 「외국어진행강좌 확대 추진계획」이란 공문에는 외국어로 강의를 진행하면 인센티브가 지급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를 접하자마자 학과장으로서 학과 소속 교수와 강사에게 스페인어 원어강의를 독려하는 단체메일을 보내게 됐다. 하지만 얼마 후 알게 된 사실은 무척 당혹스런 것이었다. 여기서 외국어란 ‘영어’를 뜻한단다.

‘외국어=영어’란 공식이 언제부턴가 우리 의식에 각인돼 있는 듯하다. 수능시험에서 외국어 영역은 영어만을 뜻한다. 서울대에서도 국제화를 위해 외국인 교수를 대거 채용할 계획을 수립해 추진 중에 있는데, 여기서도 영어로 강의를 진행할 수 있는 외국인들에게만 지원자격이 주어진다. 지금 온 나라가 영어 지상주의에 빠져 영어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현재의 교육 실정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영어 몰입교육을 추진하다 물의를 빚은 바도 있다. 얼마나 우리 자녀들이 영어를 잘 구사하길 바랐으면 이러한 정책이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쏟아져 나오고, 이를 바라보는 많은 국민들은 겉으로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만 마음속으로는 이에 대해 수긍하는 것일까?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는 외국어 습득에 관한 이론에 따르면, 사춘기 이전에, 즉 육체적으로 성장이 멈추기 전에 외국어를 학습해야 빠른 시기에 방대한 양의 언어정보를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너도나도 형편만 되면 영어권 국가로 조기유학을 보내고 있는 현실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세계화 물결 속에서 그 누가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까?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에선 이 세상의 그 많고 많은 외국어 중에서 외국어란 영어만을 지칭한다. 영어 이외의 외국어는 단지 제2외국어일 뿐이다. 그래서 유감이다. 이러한 현 상황은 ‘영어 사대주의’라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천편일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성의 시대로 나아가자. 한곳으로만 치우치면 나중에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외국어도 마찬가지다. 영어, 물론 중요하다. 세계화 시대에 의사소통 수단으로서는 가장 유용한 언어다. 그러나 영어 말고도 중요한 외국어는 많다. 지역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비영어권 나라들에서 영어로 원활하게 의사소통이 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에 이르기까지 20개국이 넘는 광활한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영어로 의사소통하기로 작정했다면 차라리 한국어를 사용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서울대 학생들이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세계인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기를 꿈꾼다면, 영어만을 외국어로 보는 닫힌 시각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보다 더 다양한 외국어의 바다에 뛰어들기를 바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더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하는 만큼 그곳의 문화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한국의 대학에서 수학하기를 희망하는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도록 정부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펼쳐야할 것이다. 우리가 앞장서서 그들을 위해 영어로 강의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본다. 한국을 배우고 싶어 한국 대학을 찾아오는 외국인들이 한국어 수업을 들으면서 한국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한국인으로서 모국어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져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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