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터진 직후 학부에 입학해 드디어 대학에 입학했다는 기쁨과 성인이 되었다는 설렘으로 1, 2학년을 보냈다. 2년만에 좋은 성과를 올리기는 힘들다는 생각에 4학년이 되자 슬슬 장래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고, 졸업 후 그동안 관심있던 생화학 실험실의 문을 두드렸다. 실험실에서의 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대학원 생활과는 사뭇 달랐다. 물론, 조금씩 들었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대학원생은 실험실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심지어는 일요일에도 나와야 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생활의 변화뿐만 아니라, 대학원 생활을 거치는 동안 많은 대학원생들이 사고의 변화 혹은 다양화를 겪는다. 사람들과 잠깐씩 만나 발표수업 혹은 동아리 활동을 해왔던 학부 생활과는 달리, 대학원에서는 실험실이라는 공간에서 선배, 동기, 후배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생활해야 한다. 때로는 의견의 충돌로 갈등을 겪기도 하고, 실험이 한동안 난항을 겪을 때면, 과연 내가 여기서 성과를 얻을 수 있는지 심란해지기도 한다.

한편, 행동반경이 좁은 대학원 생활에도 세상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부 시절 확고했던 마음들도 조금씩 흔들리게 마련이다. 학부를 졸업할 때는 대학원 생활만을 생각하면 됐지만, 이제는 졸업을 앞두고 취직, 박사과정, 아니면 제3의 길 등 자신의 앞날에 대해 본격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현재 많이 나아졌다지만 아직 열악한 이공계의 현실에도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곤 한다. 선진국에 비해 아직 턱없이 부족한 연구비, 실험하기에도 바쁜 시간에 수없이 밀려드는 잡무, 그리고 무엇보다 안정되지 못한 미래 때문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대학원을 중도에 포기한다. 그러나 대학원 생활을 거치면서 나는 이제야 내가 진정으로 어른이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어진 커리큘럼을 받아들여 공부했던 학부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무한하게 존재하는 변수들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해가며 문제를 해결해가는 방법을 약간이라도 터득하게 되었다. 또한 한 공간 안에서 여러 사람과 하루 종일 생활하면서 집단 생활의 어려움과 공존의 방법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나름으로는 심연에 떨어진 듯 힘겨웠던 좌절을 이겨내는 법도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 과의 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 앞으로도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일은 ‘자신과의 고독하고 힘겨운 싸움’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과가 좋을 때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을 때에도 진정으로 그것을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것이 내가 졸업을 앞두고 얻게 된 가장 큰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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