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행동반경이 좁은 대학원 생활에도 세상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부 시절 확고했던 마음들도 조금씩 흔들리게 마련이다. 학부를 졸업할 때는 대학원 생활만을 생각하면 됐지만, 이제는 졸업을 앞두고 취직, 박사과정, 아니면 제3의 길 등 자신의 앞날에 대해 본격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현재 많이 나아졌다지만 아직 열악한 이공계의 현실에도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곤 한다. 선진국에 비해 아직 턱없이 부족한 연구비, 실험하기에도 바쁜 시간에 수없이 밀려드는 잡무, 그리고 무엇보다 안정되지 못한 미래 때문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대학원을 중도에 포기한다. 그러나 대학원 생활을 거치면서 나는 이제야 내가 진정으로 어른이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어진 커리큘럼을 받아들여 공부했던 학부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무한하게 존재하는 변수들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해가며 문제를 해결해가는 방법을 약간이라도 터득하게 되었다. 또한 한 공간 안에서 여러 사람과 하루 종일 생활하면서 집단 생활의 어려움과 공존의 방법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나름으로는 심연에 떨어진 듯 힘겨웠던 좌절을 이겨내는 법도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 과의 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 앞으로도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일은 ‘자신과의 고독하고 힘겨운 싸움’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과가 좋을 때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을 때에도 진정으로 그것을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것이 내가 졸업을 앞두고 얻게 된 가장 큰 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