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 교수(생명과학부)

지난 3월 10일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준구 교수의 “무엇을 위한 대운하인가”를 시작으로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된 열 번의 공개강좌가 교내에서 개최되었다. ‘대운하를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 모임’에서 주최한 이 공개강좌는 교내외의 관심 속에 순조롭게 진행되어, 5월 13일 경남대 이상길 교수의 ‘한반도 대운하와 문화재’를 끝으로 마무리 되었다. 열 번의 강좌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생중계되었고, 대운하를 우려하는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강연 원고는 대운하를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모임 홈페이지 http://anticanal.tistory.com에서 볼 수 있다).

거대 기술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구상단계에 있는 기술도 그럴 수 있고, 심지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기술도 세상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라크가 보유했을 것이라고 추측된 ‘대량 살상무기’는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수많은 사람의 인명을 앗아갔다. 아직 그 실체도 분명하지 않은 이번 대운하 프로젝트는 많은 국민을 절망하고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여론은 대운하를 반대하는 입장이 훨씬 뚜렷하지만, 권력을 쥔 사람들이 이를 포기하지 못하고 “운하가 아니라 수로다” “부분적으로 시행한다” “추진여부는 변화가 없다”는 식으로 추진 의지를 흘리고 있다.

이번 공개강좌에서는 운하와 관련된 경제, 환경, 토목공학, 수자원, 법률, 물류, 지역개발, 문화재 등의 문제를 꼼꼼하게 다뤘다. 각각의 주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이에 대해서 국내 최고의 전문성을 보유한 교수들은 한결같이 한반도 대운하를 “해서는 안 되는 사업”이라고 규정했다. 경부운하는 물류를 통한 경제성도 전무하고, 우리나라 지형과 하천에도 적합하지 않고, 홍수의 위험을 증가시킴으로써 치수에 역행하고, 식수원 이전에 따른 심각한 식수 부족의 문제를 야기하고, 종합국토개발계획과 같은 대원칙에도 어긋나고, 수도권 밀집을 낳는 것처럼 지역균형개발에도 역행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운하를 고집하는 이유는 정치적인 데 있다. 서울대 교수모임은 운하에 대한 참된 인식의 확산이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고, 또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대운하를 찬성하는 여론은 지난 1월 40%에서 이제 19%로 떨어졌다. 반대 여론은 70%에 이른다. 이제 “운하는 안된다”는 것이 민심이다. 민심을 반영해서 정책을 결정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자명하다. 지금 필요한 정치는 권력자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밀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왜 나는 옳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대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는 포기하는 것이 옳다. 지금의 토목공학으로 이 운하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해도, 엄청난
경제적 비용과 사회적 손실에 비해서 그 효과는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규모 운하가 어떤 환경 재앙을 가져올지, 생태계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수많은 위험과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운하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지금 지어놓으면 20~30년 후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데, 운하의 정당성을 이렇게 가볍게 말하는 것은 현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의 삶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지식인이나 정치인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권력은 국민이 잠깐 맡긴 것이다. 국토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그것도 오래 전에 사망선고를 받은 18세기 교통수단인 운하를 건설하라고 국민이 권력을 맡긴 것이 아니다. 인간이 대자연 앞에 겸손해야 하듯이, 권력자는 국민 앞에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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