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2일 국내 항공사의 브라질 상파울루 노선이 7년여 만에 재취항한다. 또 지난 5월 9일에는 외교통상부 산하에 ‘중남미자원협력센터’가 신설됐다. 이를 두고 항공사와 외교통상부는 “급성장하는 라틴아메리카 경제에 한국기업의 관심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렇게 한국의 자원외교와 국제무역에서 이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지만, 라틴아메리카 지역학 연구는 “개발도상국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편견에 밀려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라틴아메리카 관계=해방후 1948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남한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승인하고 1950년 한국전쟁 때 콜롬비아와 멕시코 등이 남한을 인적·물적으로 지원하면서 시작된 한국과 라틴아메리카의 관계는 냉전체제하에서 정치적 우방관계를 유지했다. 80년대 이후에는 대(對)라틴아메리카 외교의 무게중심이 정치에서 경제로 이동함에 따라 민간부문도 이 지역에 활발하게 진출하기 시작했다.

라틴아메리카는 2006년 우리나라 총 무역흑자의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에게 중요한 지역이 됐다. 한국 최초로 체결된 한·칠레 FTA의 순항으로 한·멕시코 FTA, 한·MERCOSUR(남미공동시장) FTA도 협의되기 시작하면서 양자 간 경제협력은 더 강화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에 따른 경제블록화 추세에 맞춰 1999년 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협력포럼(FEALAC)이 출범해 두 지역 사이에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과학기술·문화 차원으로도 교류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우석균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자원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라틴아메리카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역대상국”이라고 말했다.

라틴아메리카는 한국국제협력단 (KOICA) 대외원조의 14%를 차지하는 등 한국의 주요 원조대상으로 관계를 맺고 있기도 하다. 라틴아메리카는 아프리카나 아시아 빈국들에 비해 소득수준이 높지만 빈곤층이 전체인구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양극화가 극심해 국제사회의 원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우석균 연구원은 “한국은 경제규모에 비해 현재 국제사회공헌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효율적인 원조를 위해서도 지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라틴아메리카 지역학 연구 현황=학문적 의미의 라틴아메리카 지역학 연구가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1974년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가 출범하면서부터다. 1980년대까지 정치적 관계에만 한정됐던 한-라틴아메리카 관계가 1990년 전후로 경제적 협력에까지 확대되자 이 지역에 대한 총체적 연구의 필요성이 한층 증가했다. 이에 1989년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1997년 부산외대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가 창설돼 활동중이다. 라틴아메리카연구소의 이성훈 연구교수는 “지역연구소라는 특성상 지역의 문화·언어 등에 관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성, 근대성, 탈근대성 등에 대한 이론적 성찰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라틴아메리카 연구소는 ‘초국가주의적 맥락에서의 라틴아메리카의 위치’라는 대주제하에 서구적 근대성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시도하면서 다양한 세계화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는  2004년 이후 인권분야에 집중해 민주화 이후 메소아메리카 원주민, 흑인 등 라틴아메리카 내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문화지도를 읽어내고 인권 상황을 진단하는 분석을 수행해오고 있다.

최근 두 연구소가 학술진흥재단 인문한국(HK)사업에서 유망연구소로 선정돼 연구여건이 개선되자 이들 연구소는 새로운 분야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는 인터넷 에 ‘중남미한인넷’ 홈페이지를 신설해 라틴아메리카 이주 한인들에 대한 연구와 지역 진출 기업들에 대한 정보지원을 함께 도모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연구소도 지난 3월 웹진 「Translatin」(translatin.snu.ac.kr)을 창간해 전문적인 연구자들에게 한정됐던 라틴아메리카 지역학을 좀 더 대중화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한편 서울대 국제대학원 등의 지역학 전공에서도 별도로 사회개발 분야 등을 특화시킨 지역연구가 소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관의 지역학 커리큘럼은 주로 아시아, 미주, 유럽을 다뤄 라틴아메리카에 집중한 지역학 연구는 활발하지 않은 실정이다.

◇라틴아메리카 연구의 과제=전임연구원 수가 수백명에 달하는 미국이나 유럽의 라틴아메리카 연구소들에 비해 상근연구자가 2명 내외이고 기타 연구자들이 특별한 연구비 지원 없이 느슨하게 연계돼 있는 국내연구소의 상황은 열악하다. 국내 라틴아메리카 연구자들은 모두 지역학 연구를 저해하는 가장 큰 외부적 원인으로 정부와 대학의 ‘연구지원 부족’을 지적했다. 우석균 연구원은 “현재 연구소 사정으로는 한 교수가 학과,  행정, 연구소 업무를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연구에 전념하기 힘든 상황을 설명했다.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장 김우성 교수(부산외대·스페인어과)는 “우선적으로 정부나 대학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장기적 계획 없이 그때그때 시류에 따른 단기적 연구만을 추진하는 ‘화전민식 연구’로는 성과를 제대로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연구자들 간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도 국내 라틴아메리카 지역학의 문제로 지적된다. 라틴아메리카연구소장 김창민 교수(서어서문학과)는 “그간의 지역연구는 외형적으로 어느 정도 성장했지만 연구자나 분과학문 간에 인적 자원과 성과를 효율적으로 공유하지 못해 시너지효과를 창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라틴아메리카 지역학 연구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학연구소가 사회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우성 교수는 “정부나 기업들이 원하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지역학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외교통상부나 관련기업들과 연계해 공동연구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학연구소 차원의 연구가 실용성만을 강조한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않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우석균 연구원은 “정부기관이나 기업들이 요구하는 것은 주로 정치·경제 분야의 실용적 지식”이라며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장기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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