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대 외교학과 이옥연 교수

미국인들은 종종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나머지 국가들, 소위 ‘rest of the world’가 미국의 행태적 결과를 교과서에 나오는 원론에 의해 판단한다며 불공평함을 토로한다. 다른 국가들에는 각종 면제조항들이 적용되는 반면 미국에는 유난히 에누리 없이 잣대를 들이댄다는 불평이다. 사실 우리에게 친숙하게 인식되는 미국의 이미지는 건국 당시와 사뭇 다르다. 예컨대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정교분리 원칙은 역사적으로 구대륙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이주해 정착한 건국세대들에게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기보다 상치되는 관점이 병존해왔으며 다만 시대에 따라 그 순위가 달라졌다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초기 이주민들은 공화정의 통치 원리를 제공하는 기제 중 하나로 종교를 정치제도에 접목했다. 후일 초대 매사추세츠 총독이 된 존 윈드롭은 1630년 아라벨라 호 선상에서 미국, 구체적으로는 보스턴을 가리켜 “언덕 위 도시로 우뚝 설 것”이라 선언했다.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므로, 만약 우리가 도모하는 원대한 사업에 임하시는 신의 가호를 경원시하면 신은 우리에게 베푸는 은혜를 거둬들여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될 것"이라며 경고했다. 즉 종교와 정치의 유기적 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근본주의 종교지도자들은 정교분리 원칙에 근거해 종교의 절대성이 정치의 상대성에 끌려 다닐 수 있다고 경고했다. 1657년 뉴네덜란드의 식민지 총독이었던 피터 스타이베슨트는 네덜란드 개혁교를 식민지의 공식 종교로 지정하고 퀘이커교도들을 포함한 비신도들을 핍박했다. 그러자 침례교파 신학자이며 후일 로드 아일랜드 식민지를 건설한 로저 윌리엄스는 “종교라는 정원과 세속이라는 야생의 세계를 분리하는 울타리나 담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종교를 명분으로 한 정치적 핍박을 비판했다. 종교와 정치의 야합을 경계한 것이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인민의 법령인 헌법이 정교분리의 원칙을 명시하는 반면 최대 정치 축제라고 할 수 있는 선거에서 종교는 상징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주요 선거이슈로 등장한다. 미국의 정치과정에서 종교와 정치를 분리해 실질적 유착관계를 제어하려는 의지와 헌법에 명시된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종교와 정치를 교차시켜 상호의존관계를 강화하려는 의지가 병존한다는 증거다.

그러나 지난 20여년간 원칙적인 정교분리와 실질적인 정치와 종교의 중첩이 기묘한 동거를 유지하는 데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점차 사회적 보수주의라는 신종 보수주의가 미국의 양극화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복합사회에서 양극화가 심화되면 자칫 사회분열구조의 간극이 극심하게 벌어지고, 각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치규범에 대한 공격으로까지 치닫게 되면 집단 간 타협은 불가능해져 결국 복합사회의 기반을 통째로 흔들 수 있다.

게다가 대선철에 도덕적 가치관이 핵심 선거이슈로 선정되면 후보들에게는 분명한 입장표명이 요구되고 유권자들은 그에 따라 투표를 결정한다.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지명자로 확실시되는 오바마 후보는 기존 정치행태의 혁신을 부르짖으며 새로운 미국상(像)을 약속하고 있으나 도덕적 규범에 준하는 정책에 대한 입장표명 요구는 회피하고 있다. 미국판 신정정치는 요원한 이야기다. 그러나 타협이 불가한 원론과 타협을 전제한 정치의 조우를 미국은 변함없이 절묘하게 창출해내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가 미국을 얼마나 아는지 반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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