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민(사회학과 석사과정)

2000년, 1학년 때, 3월 개강을 즈음하여 새로 사귀게 된 과 친구들과 강남역으로 영화를 보러갔다. 여러 명이 같이 갔기 때문에 볼 영화를 정하기 힘들었다. 어떤 영화를 볼까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그거 아레께 봤는데”라고 말했다. ‘아레께’의 의미를 두고 약간의 설왕설래가 좀 있고 나서 새로 사귄 친구들이 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아레께’는 ‘그저께’의 경상도 사투리다.) 이상하게도 그 후로 나는 실수로라도 아레께라는 말을 쓰지 않고, 아주 의식적으로 그저께라고 말한다.

그 순간 나는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나와 새로 사귄 서울 친구들을 구별하는 사회적인 경계를 확실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 느낌은 ‘마음의 상처’라는 식상한 표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커다란 사회적 힘이 나를 격자가 새겨진 체스판 한 구석에 갖다 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다지 유쾌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 후로도 종종 나와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보았다.

결국 대학원에 진학하여 그러한 경계와 느낌들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최근 들어 강남, 특목고, 영어, 부동산, 펀드 등등의 ‘코드’들이 정신없이 사람들을 ‘사람대접 받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누는 것을 보면서 사회적 경계와 배제의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이 글은 어떻게 하면 그런 현상들을 제대로 사유할까를 고민한 초보적인 결과물이다. 좋게 읽어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글의 기초가 된 페이퍼를 작성했던 수업을 진행하셨던 심보선 박사님, 데이터 사용을 허락해 주시고 좋은 선행연구를 제시해 주신 연세대 사회학과의 한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또 페이퍼 수정 과정에서 중요한 코멘트들을 주신 사회학과의 박경숙 교수님과 이재열 교수님께 특별히 감사드린다. 두 분 선생님들께서 매우 바쁘신데도 꼼꼼한 가르침을 주셨고, 특히 이재열 선생님께서는 논문 마지막에 논지를 확실히 드러내는 대응분석의 아이디어를 제시해주셨다. 더불어 언제나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 사회발전연구소의 정진성 소장님께도 감사드린다.

공부를 하다보면 내가 도대체 뭐를 하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상은 더욱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헷갈림이 해결될 것이라는, 일종의 격려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부르디외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과 어떤 책보다도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엄수진 양에게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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