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형기 교수(정치학과)

이번 대학논문상을 심사하면서 김선민의 「음악장르 선호를 통해 본 문화적 불평등」 단 한 편만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그것도 최근 몇 년간 대학논문상 경쟁에서 한번도 주어지지 않던 ‘당선작’을 주기로 심사위원들이 만장 일치로 동의하게 되었다. 매년 당선작 없이 가작으로 한두 편을 선정하던 전례를 깬 이유는 위 논문이 대단히 잘 쓴 것도 있지만 대학논문상에 보다 많은 학생들의 참여를 장려하기 위한 의도도 있다.

그렇다면 왜 위 논문은 거의 모든 심사위원이 만장일치로 ‘대단히 잘 쓴 글’로 선정했는가? 어떤 글을 잘 쓴 글이라고 할 수 있는가? 글쎄, 정답 같은 도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심사위원이 동의하듯이 ‘좋은 글’이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좋은 글’은 무엇보다 독자와의 논쟁에서 승리한 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문제제기가 명확하지 않으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 논리와 초점을 바로 쓸 수가 없다. 이번에 투고된 많은 글들의 약점은 바로 문제제기 혹은 퍼즐(puzzle)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반의약품을 둘러싼 사용자, 약자, 생산자의 역학관계를 통해 살펴본 한국사회의 건강관리 담론」이나 「도시설계적 관점에서 고찰한 문화다양성의 함의」 같은 투고 글들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경험적 논증이나 자료수집의 노력이 대단히 높이 평가할 만했다. 그러나 명확한 문제제기가 없어서 글의 전개와 초점이 흐려지는 약점이 있었다. 똑같은 이슈라 하더라도 어떻게 문제제기 하느냐에 따라 저자의 시각과 문제를 푸는 방식의 방향이 정해진다. 그만큼 문제제기를 명확히 하는 것은 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좋은 글의 두번째 요건은 논리적 체계다. 글이 문제제기와 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라면 좋은 글은 왜 자신의 주장이 타당한지를 독자에게 체계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독자는 쉽게 상대에게 설득당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론을 제기하며 설득당하기를 거부한다. 좋은 글이 되려면 이러한 잠재적 독자들이 제기하는 반론을 염두에 둔 구체적이면서 체계적인 논리전개가 필요하다. 물론 경험적 논증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끝으로 전체 주장이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것이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함의가 있어야 한다. 투고된 글 중에 「초상화에서 성화로의 이행」은 명확한 문제제기나 논리 전개는 있지만 그것이 일반 독자들에게 얼마나 흥미로운 문제인지 그것의 사회적 함의는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약점이 있었다.

이러한 잠재적 독자와의 대화라는 관점에서 김선민의 「음악장르 선호를 통해 본 문화적 불평등」은 명확한 문제제기와 논리 전개, 구체적인 경험적 논증을 통해 충분히 잠재적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사회의 중요한 한 단면을 새롭고 흥미로운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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