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의무는 정책‘집행’
vs
정권 변해도 일관성 지켜야


지난달 23일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책임연구원이 “‘한반도 물길 잇기 및 4대 강 정비 계획’은 한반도 대운하 계획”라고 폭로한 데 이어 26일과 28일에는 농림수산식품부(농림부) 기획재정담당관실 이진 주무관과 농림부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 정수경 사무관이 각각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은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 재협상해야 한다”, “고시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들은 ‘양심을 지킨 공무원’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공무원들은 모두 양심이 없는 것일까. 지난 1월 국정홍보처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스스로를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고  지칭한 것처럼 공무원들은 정말 ‘영혼 없는’ 존재일까.

◇한국의 공무원, 누구를 위해 일하나?=지난해 ‘쇠고기 수입 정책’에 대해 “국제수역사무국 기준보다 철저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농림부 이상길 축산정책단장(전 농림부 축산국장)은 정권이 바뀐 현재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말한다. 또 참여정부 시절 대운하를 “타당성이 부족하고 환경오염의 소지가 있는 사업”이라고 말했던 국토해양부(전 건설교통부)는 현재 대운하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이 같은 공무원들의 행태에 국민들은 “‘국가공무원법’에서 공무원의 신분과 정년을 보장하는 것은 잦은 정권의 변동에도 정책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라는 뜻”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현재 공직에 종사하고 있는 행정학과의 한 교수는“공무원의 의무는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라며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한 확신과 숙고 없이, 결정된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의무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임도빈 교수(행정대학원)도 “단기적으로 공익을 훼손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책도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한 정책인 경우가 많다”며 “더욱이 현대사회의 정책은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공무원 스스로 가치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헌법 7조에 명시된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공무원의 의무는 국민이 뽑은 의사결정자의 정책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실천된다는 것이다. 

◇공무원과 국민 모두의 사회를 위해=그렇다면 공무원은 의사결정자인 대통령과 국회의 정책을 집행하는 ‘하수인’에 불과한 것일까. 이에 김상봉 교수(고려대·공공행정학과)는 “공무원은 의사결정자에 의해 결정된 정책을 따라야만 하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면서도 “하지만 적절한 근거와 국민적 합의가 필수적인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공무원은 국민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의사결정자가 올바로 사고하고 판단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의무를 무시한 채 사익을 좇아 권력집단이 원하는 정책을 무조건 따르는 공무원들의 태도는 명백한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양심선언’에 나선 공무원들 모두 내적갈등이 심했다고 말한다. 옳지 않아 보이는 정책도 공무원 신분으로서 반대의견을 개진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병섭 교수(행정대학원)는 “우리나라는 군사정권 등을 경험하면서 의사소통구조가 대체로 경직돼 가는 모습을 보였다”며 “공직사회뿐 아니라 어떤 사회에서도 내부적으로 결정된 사안을 비판하면서 기존 질서를 깨는 것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공무원들의 생계 문제도 배제할 수 없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정용천 대변인은 “신분이 보장됐다고는 하나 직·간접적으로 사퇴를 압박 받거나 보직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탄압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태윤 교수(한양대·행정학과)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민들의 노력이 필수적”이라며 “공무원에게만 문제 해결을 맡겨두지 말고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상황을 개선하려고 노력할 때 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공직 사회 자체의 노력도 필수적이다. 김상봉 교수는 “국민의 편에 서지 못하는 공직사회의 문제는 ‘관료 조직’의 특수성 외에도 ‘평생직장’을 얻은 공무원 개인의 안일함과 사욕 때문”이라며 “공직을 입신양명의 길로 여기는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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