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늦게 들어온 아이를 부모는 호되게 꾸짖는다. 아이의 두 눈은 반항기로 가득하다.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의 표정에서 ‘화난 이유’를 찾거나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아이가 저지른 일에 대해 추궁하기 시작한다. “너 어디 있다가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또 못된 친구들이랑 나쁜 짓하고 오는 것 아니니?” 잘못된 대화 방식에 부모와 자식 간 관계가 단절되는 순간이다. 현재 정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한 이 조야한 비유가 여러모로 불편하게 들린다면 그것은 크게 3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먼저 국민의 분노가 단순히 아이의 반항심으로 설명되기엔 너무나 크다. 둘째, 제대로 된 가정에서 부모는 아이를 화나고 분노케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현 정부가 부모 역할이라니….

촛불시위에 참여했다가 연행된 사람의 수도 200명을 넘었다. 도대체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을 수정해 고시를 발표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탓일게다. 정부는 촛불시위에 정치적 배후 운운하며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해 조사했지만 연행된 사람 중 사회단체 소속이거나 과격 시위 전력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일부 보수언론과 우익단체에선 배후에 친북 좌익세력이 있다는 ‘색깔론’까지 내놓고 있다. 검경은 배후를 찾으려 무차별 연행을 해 조사 해봐도 불법시위를 선동했다거나 폭력을 휘두른 정황이 드러나지 않자 잡았다가 풀어주는 것을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이다. 광우병 논란에 싸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촛불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석하는 국민들을 두고, 정부나 보수 언론에서는 ‘배후’ 운운하지만 과연 그렇게 볼 수 있을까? 촛불시위에는 10대에서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몰렸다. 그들이 외친 수많은 함성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국민이 주권자가 아니라 한다. 광우병 괴담에 속아 배후세력의 조종을 받는다고 한다. 주권자의 판단과 행위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고 관철시키려 하기에 촛불시위에 나온 사람들의 행위는 말 그대로 정치인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순수한 촛불집회가 정치적으로 변질돼가고 있다며 ‘순진한 시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는 수백 명이 되건 몇 명이 되건 다 처벌할 것이라 한다.

촛불시위와 이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야말로 국민들을 무지몽매한 집단으로 보고 통제하고 훈계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또한 국민에 대한 사과라기보다 ‘훈계’에 가까웠다.“죄송하다”, “송구스럽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담화 내용 어디에서도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할만한 내용의 해명은 없었다. 대통령 자신이 국민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짧은 연설문으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수정된 위생 조건에도 불구하고 수입중단 조치, SRM 명시 등 독소조항들은 여전해 국민의 반발이 극에 달하고 있다. 장관 고시 발표를 강행해 놓고 정부는 국민의 반발이 있으면 수정책을 추가적으로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정부는 국민들의 의견을 자신의 입에 맞게만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면 적어도 귀담아 듣고 의견을 수렴해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수 없다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각기 제멋대로 행동하는 콩가루 집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