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시행 1년 지났으나 상황은 오히려 악화
편법 쓰는 기업들과 유명무실한 법 제도가 문제
촛불 시위 뒤에 가려진 비정규직에 관심 가져야

지난 6일(일)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재계가 비정규직보호법(비정규직법)을 무력화하는 내용의 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했다. 사실 고용주들은 이미 각종 편법으로 비정규직법을 피해왔다. 비정규직법 시행 1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울상인 이유다. 

◇비정규직법 시행 1년, 누구를 보호했나?=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3월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54.3%(858만명)였다. 비정규직법 시행 전인 2006년 8월 55%와 별 차이가 없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비정규직법이 적용되는 300인 이상 기업의 대부분은 기간제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거나 하도급·용역 등의 간접고용으로 대체해 법을 피해갔다”고 설명했다.

‘고용의 질’은 어떻게 변했을까. 비정규직의 올해 1~3월 월평균 임금은 127.2만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3.6% 줄었다. 또 정규직 임금 181.1만원의 70.6%에 불과하다. 지난 1년간 사회보험 가입률은 1.6% 낮아졌다. 한국노동연구원 데이터센터 이병희 소장은 “대표적 비정규직인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임금이나 근로조건에 대한 실태 파악도 안 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일부터 비정규직법은 1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됐다. 하지만 중소기업중앙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제조기업의 41.2%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동일노동에 대한 임금차이가 여전히 있다”고 답했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기업은 7.3%에 불과하며 “기간제 비정규직을 간접고용으로 전환할 계획”인 기업 또한 35.3%에 이르렀다. 언제든 ‘제2의 이랜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효성 없는 차별시정제도=비정규직과 달리 매년 재계약을 할 필요가 없는 무기계약직도 정규직과는 다른 임금·승진 체계가 적용돼 차별받는다. 노동계는 160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간접고용 형태로 차별받고 있다고 추산한다. 실제로 지난달 27일 노동부가 비정규직 노동자 14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적지 않은 기업이 기간제 노동자를 간접고용으로 전환하거나(19.9%), 계약해지 이후 다른 고용자로 교체했다(21.4%). 단 한명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은 기업도 37%나 됐다.

차별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차별시정제도’가 도입됐지만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사건은 800여건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중 대부분은 회사의 계약해지 압박과 회유 등으로 자진 취하해 10%만이 차별로 인정됐다. 회사가 불복할 경우 법원 소송까지 2~3년이 걸려 1~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노동자는 버틸 수가 없다. 비정규직 노무법인 ‘길’의 송치경 노무사는 “차별시정은 비정규직 당사자만이 신청할 수 있으며 차별의 대상과 정도를 밝히는 자료를 직접 명시해야 해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구멍숭숭’ 비정규직법 넘어설 대안은?=노동사회단체들은 입을 모아 “부실법인 비정규직법을 전면 개정하라”고 외친다. 비정규직법은 애초에 고용주가 악용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비정규직법의 적용대상이 기간제·시간제·파견 노동자로 한정돼 간접고용 등의 고용형태는 법의 적용을 피해갈 수 있다. 또한 절차가 복잡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만 신청가능한 차별시정제도도 문제다. 노동사회위원회 이승욱 실행위원은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는 법적으로 자신의 고용주에게 대항하기 힘들다”며 “노동위원회 활성화 등 국가가 직접 현장을 조사·감독해야 노조가 나서 차별시정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은 2.8%(24만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노조 가입과 동시에 회사의 감시와 협박을 받는 등 고용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이주희  교수(이화여대·사회학과)는 “산업별 노조가 하나의 대안”이라며 “산별 차원에서는 비정규직의 조직화가 쉬우며 개별기업 노조에서의 이해관계 충돌이 적다”고 말했다.

33%(283만명)에 그치는 비정규직의 사회보험가입률을 높이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통합민주당 문병주 연구원은 “보험은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해소하는 등 고용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며 “보험료를 전년 기준으로 책정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처럼 전월기준으로 책정하는 등 보험법 개정을 통해 비정규직의 보험가입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고질적 문제다. 촛불시위에 교육·대운화·민영화 등의 문제는 이슈화됐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아니었다. 윤진호 교수(인하대·경제학부)는 “비정규직이 예외적 상황으로 치부되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개혁은 일어나기 힘들다”며 “비정규직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11일 대법원은 원청회사(현대미포조선)가 하청업체(용인기업)의 노동자들을 직접 채용·지휘·감독하는 등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이는 ‘도급계약’을 넘어선 ‘직접고용’이라는 의미있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이 6년의 논란 끝에 시행된 비정규직법 하에서도 1년을 더 울어야 했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한줄기 희망이 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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