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 창립 100돌 기념 국제학술대회]

1908년 8월 31일 한글학자인 주시경, 김정진 등의 주도로 국어연구학회가 창립됐다. 이 학회는 국어강습소를 운영해 한글을 보급했고 후신인 조선어연구회는 훈민정음 반포 8회갑을 맞아 ‘가갸날’을 제정했다. 가갸날은 이후에 한글날로 개칭됐다. 또 이 학회는 조선어학회라는 이름으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펴냈고 광복 이후에는 ‘한글학회’로 개칭해 각종 한국어 사전을 편찬했다.

한글학회 100돌을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지난 8월 29~30일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렸다. 100명의 청중이 참석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한글학회 100돌과 우리 말글의 미래’라는 대주제 하에 국내외의 한글 연구자들이 다양한 연구 주제를 발표했다.

이 중 외국인 학자의 발표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알브레히트 후베 교수(독일 본대ㆍ한국어번역학과)는 ‘훈민정음의 불운한 역사’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훈민정음은 창제 후 망각기를 거쳐 1997년 유네스코 ‘인류의 기억’에 등재되는 등 재조명됐지만 서양에는 여전히 훈민정음에 대한 의심이 존재한다”며 “이 연구는 이런 선입관을 제거하기 위해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는 서양이 제기한 ‘중국 모방설’에 대해 “한글이 차용한 것은 언어 자체가 아니라 언어의 형성 원칙뿐”이라고 반박했다. 또 한글의 철학적 배경인 음양오행설을 무시하는 서양의 견해를 비판하고 음양오행에 의한 새로운 자모 순서를 제안하기도 했다.

손호민 교수(미국 하와이대ㆍ언어학과)는 ‘한국어의 유형적 특징’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손 교수는 노암 촘스키 교수(MIT대ㆍ언어학과)의 언어 보편성 관점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언어의 절대적 보편성을 가정하지 말고 유형적으로 다른 언어군은 아예 서로 다른 통사의 기저구조를 설정해 각 언어에 타당성 있는 형태-통사론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한국어의 형태-통사론에 나타난 유형은 △풍부한 교착적ㆍ통합적 형태론 △주어-목적어-서술어의 구조 △엄격한 지배사 후행 △주어-술어 구조와 주제-해설구조의 공존 △동일층위의 성분간 어순 치환 허용 △대우법의 문법화 △생략현상 등 7가지다. 손 교수는 “영어권 국민들이 한국어 학습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영어가 한국어의 7가지 유형과 공유하는 특징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며 “한국어를 학습하려는 외국인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함께 언어 유형론적 특징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주원 교수(언어학과)는 한국어가 포함된 알타이언어 자체를 분석했다. 김 교수는 “그간의 알타이언어 연구는 한국어의 계통을 밝히기 위한 대상언어 연구에 불과했지만 이 연구에서는 절멸 위기에 있는 알타이언어 자체에 주목해 그 일반 언어학적 의미를 소개했다”고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 그는 어원어와 각종 알타이어의 연관성을 제시해 일반언어학적 특징을 규명해냈다. 발표에는 ‘결혼하다’가 남자와 여자의 경우 다른 어휘가 쓰이는 것, 1년을 6계절로 나누는 어원어와 4계절로 나누는 만주어의 형태적 유사성  등의 예가 포함돼 있다.

사회와 발표를 맡은 권재일 교수(언어학과)는 이번 학술대회에 대해 “한국의 언어학이 세계와 비교해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자리였다”고 평했다. 또 그는 “외국어에 대한 외국학자들의 높아진 관심을 볼 수 있었다”며 “이제는 한국 내의 연구를 넘어 한국의 연구성과를 통해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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