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환 편집장
‘이 장애는 주로 전쟁, 천재지변, 물리적 폭행, 교통사고, 화재 등 심각한 충격 때문에 발생한다. 증세는 원인모를 불안, 초조, 대인공포증, 무기력 등으로 1개월에서 많게는 수년의 잠복기를 가진다. 증세는 개인에 따라 충격 후에 나타나거나 수일에서 수년이 지난 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 급성의 경우 비교적 예후가 좋지만 만성의 경우 후유증이 심해서 환자의 30% 정도는 심한 증세와 함께 사회적 복귀가 어려운 상태가 된다.’


이라크전 참전 병사와 대구지하철 참사 생존자 사례 등을 통해 유명해진 장애인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에 대한 설명이다. 이 장애는 강한 정신적인 충격이 스트레스 호르몬의 생성을 촉진시켜 뇌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불안장애’의 하나다.

문제는 잠복기가 길고 자가진단으로는 증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며 사회 부적응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촛불에 손을 데어 ‘촛불’ 소리만 들어도 배후가 궁금하거나 촛불만 보면 이상한 불안 증세를 일으키는 것’ 역시 자신도 모르게 증상이 드러난 PTSD의 일종일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전국 100만명의 인파가, 그것도 하룻밤에 모여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천재지변’에 가까운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번 외상은 2주일 정도 잠복기를 가진 뒤 본격적인 장애증세를 보이게 된다. 하지만 PTSD가 일반적으로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것과는 달리 이번 경우는 오히려 과격한 모습을 보이는데, 징후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7월말 경찰은 시위전담특공대를 구성하고 촛불집회 주최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그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 즈음 경찰청장의 말대로 80년대식 강제진압은 부활했다. 부상자가 속출했고 연행자의 수는 갈수록 늘었다. 급기야 ‘인터넷신뢰저해사범 수사전담팀’이라는 최첨단의 부서를 창설해 얼마전에는 보수언론에 대해 광고중단운동을 벌인 인터넷 카페 운영진 등 24명을 형사처벌하는 쾌거(?)를 이룬다.

다음으로는 언론에 불안증세를 보인다. 정부는 검찰로 하여금 MBC PD수첩에 대해 삼성특검보다 더 많은 수사력(부장검사 포함 5명)을 동원해 수사를 벌였다. 비록 네티즌들의 ‘클릭질’ 이상의 결과물은 없었지만 MBC 경영진의 사과를 받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용역산성’을 쌓아 YTN 사장을 손쉽게 교체한 정부는 언론사에 경찰을 투입하면서까지 언론을 짓밟았다. 80년대와 21세기를 혼동한, 일종의 ‘기억장애’다.

80년대를 살고 있는 정부가 만든 또 하나의 웃지못할 코미디가 바로 국방부 ‘불온서적’ 선정이다. 21세기의 출판사는 재빨리 기획전을 마련했고, 몇몇 책은 이제 없어서 못 팔 지경이 됐다. 색깔공세도 잊지 않았다. 경찰이 연세대 오세철 명예교수를 비롯한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소속 회원들을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21세기의 재판부는 역시 영장을 기각했다.


한편 여당은 시위 피해에 대한 집단소송제, 불법시위 벌금 강화, 시위시 복면 착용 금지 등 이른바 ‘반촛불입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쯤되면 광증도 거의 극에 다다른 것인데, 촛불의 열기가 잦아든 지 두 달 남짓한 시점에 이토록 다양하고 극단적인 증상이 보이는 것을 보니 다행히 급성의 경우인 듯하다. 외상 후 장애가 금방 드러나 완치의 가능성이 더 높다는 말이다. PTSD는 방치하면 자살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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