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학문운동과 민주적 교수운동의 대부’ … 민중공원에 안장

김진균 명예교수가 향년 67세로 2월 14일(토) 별세했다. 지병인 대장암 증세가 악화된 데 따른 것이다.

1937년 진주에서 출생한 고 김진균 교수는 68년부터 74년까지 서울대 상대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이후 75년부터 사회학과 교수로 강단에 서다 지난해 퇴임했다.
김 교수는 민주화를 향한 곧은 신념으로 많은 역경을 겪으면서도 진보 운동과 학술 활동에 많은 업적을 남겨 ‘진보적 학문 운동과 민주적 교수 운동의 대부’라 불린다.

김 교수는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학술논문집에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논문을 통째로 분실하는 ‘사고’를 당했다. 또 김 교수는 80년 여름 ‘신군부 집권에 대한 지식인 134인 성명서’와 ‘서울대 교수 시국 선언문’에 참여해 이를 빌미로 해직당했다. 이후 84년에 복직될 때까지 후학들과 ‘상도연구실’을 설립, 민주화 운동을 위한 이론의 틀을 다졌으며  84년에는 진보적 소장학자들과 산업사회연구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87년에는 박종철열사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해 『대학신문』에 기고한 칼럼이 총장의 저지로 게재되지 못하자 다음해 열린 1주년 추모행사에서 이를 낭독했다.

 또 88년에는 ‘민주화를위한전국 교수협의회’를 설립해 초대의장을 맡았으며 이후 93년 ‘학술단체협의회’공동대표, 94년 ‘사회진보연대’대표, 99년 ‘진보네트워크’대표를 지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최갑수 교수(서양사학과)는 “김 교수는 많은 활동을 통해 지식인운동의 새 틀을 제시하는 한편 민주노조운동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환갑이 넘은 나이에 인터넷을 통한 소통과 연대의 형태에 주목하는 등 ‘영원한 청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이 영면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김 교수의 발인은 지난 17일(화)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으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영결식과 노제를 치른 뒤 경기도 마석 모란 민중공원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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