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갈비뼈를 손가락 하나 정도의 크기로 썰어 냄비에 넣고, 잘박잘박할 정도로 물을 붓는다.


2. 센 불에 끓여 핏물을 제거하고 건더기만 건져, 산초, 계피, 후추, 생강, 간장, 소금 등을 넣고 센 불에 끓여 물이 끓어오르면 불을 줄여 계속 끓이다가 연해지면 불을 끈다.

이 조리 방법을 보면서 무슨 음식을 떠올리게 되는지? 이 음식은 바로 중국의 송나라 때 소동파가 고안해내었다고 전해지는 양골육탕이다. 소동파는 음식을 만드는 데에 조예가 깊어, 기존의 음식을 직접 조리해서 먹기도 하고,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고 한다. 미식가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런 음식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소동파는 왕안석의 신법파에 의해 밀려난 후, 만년에 혜주라는 곳에 폄적되었다. 당시 혜주는 황량하기 그지없어 돼지고기조차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시장에서 매일 양 한 마리씩을 잡아 팔았는데, 폄적된 처지라 그조차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고기가 조금 붙어 있는 뼈 조각들을 사곤 했는데, 뼈에서 고기를 발라내기 위해 푹 끓이고 삶은 후, 양념을 더해 자신만의 음식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대문호라 불리는 사람이 뼈에 붙은 살까지 발라 먹기 위해 삶고 끓이는 이야기에서, ‘저런 조잡한 모습이...'라며 고개를 돌리는 이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문학을 하는 이의 굶어서 앙상한 모습만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소동파는 도교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렇기에 ‘양생(養生)’에 공을 들였던 것일 뿐이다. 즉, 심신의 조화를 통해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였던 것인데, 어쩌면 이런 점에서 소동파도 요즘의 웰빙족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한 웰빙의 모습은 척박한 동쪽 밭에서 자갈과 기와를 골라내던 동파의 모습에
있진 않은지.

그러나 지금 유행하는 ‘웰빙’(well-being)은 상술에 젖어 있다는 있다는 점에서 소동파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 단순히 입을 것, 먹을 것, 운동하는 것처럼 외부적인 요소에 의존해서 그것을 구매하는 것이 웰빙의 길이라고 여기도록 주입되고, 정작 웰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목표는 상실하고 있는 듯하다.

소동파는 황량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황주에 유배된 후 몹시 궁핍한 날들을 보내다가, 동쪽 언덕의 척박한 땅을 얻어 몸소 개간하기도 했고, 유명한 ‘동파육’의 재료인 돼지고기도 유배지의 사람들이 먹지 않는 것을 이용한 것이었으며, 자신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스스로 식이요법을 병행하기도 했으니, 그의 양생은 호사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가끔 우리는 좋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조각조각 기우면 그것이 곧 좋은 것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렇지만 그 누더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진실로 어떻게’라는 의문을 빠뜨리고 있지는 않은지, 요가와 스파, 유기농 야채 등이 삶을 진실로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인지, 그것의 목표가 단기적인 자기만족, 개인주의적인 발상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진정한 웰빙의 모습은 척박한 동쪽 밭에서 자갈과 기와를 골라내던 동파의 모습에 있진 않은지, 소동파가 만들었던 음식들을 보며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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