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대 총선이 다음 달로 다가왔다. 몇 년 마다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선거지만, 그때마다 사회전체가 묘한 긴장감과 기대에 휩싸임을 느낀다. 태어나서 처음 투표라는 것을 마치고 나왔을 때 느껴지는 묘한 뿌듯함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선거라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원리가 실현되는 놀라운 순간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완성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감격적인 순간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 이외에도 또 다른 보편적 선택기준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른바 “부패한 정치를 시민의 힘으로 바꾸겠다”는 시민단체들의 ‘낙선낙천․낙선운동’이 그것이다. 이번 제 17대 총선에서는 지난 총선보다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이 광범위한 형태로 조직화돼 국민들 사이에서 더 큰 보편성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의 낙선운동이 그 방법상의 문제로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보수언론들의 편파적 여론몰이가 계속되고 있음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번 총선에서의 활발한 낙선운동은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또 유력 언론의 설문조사 결과 90% 이상의 국민이 낙선운동에 찬성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앞으로 개인적 신념과 정치적 성향에 큰 영향을 주는 판단근거로써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 대상자 명단이 기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학생들의 예민한 비판의식을 곤두세워 젊은층의 고민과
개혁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표출해야

또한 이번 낙선운동은 우리 대학생들에게도 의미가 적지않다. ‘반 부패, 반 인권’ 등의 기준으로 선정된 시민단체의 ‘낙선․낙천 인사 명단’이 국민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우선 ‘차떼기’, ‘불법 정치자금’, ‘소신 없는 철새정치’ 등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한국정치 현실에 대한 분노와 개혁에 대한 욕구가 분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라면 그 누구보다도 대학생들이 가장 먼저 낙선운동에 나서야 할 듯 하다. 대학생들의 저조한 정치참여 및 투표율은 부패한 기성정치에 대한 냉소적 비판의식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번 낙선운동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젊은이들의 냉소적 비판의식을 해소하고, 그들의 정치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정치체제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낙선․낙천 운동을 바라보면 씁씁함을 자아내는 측면도 없지 않다. 낙선 운동이 단순한 선거개혁운동을 넘어서 한국 정치 자체를 개혁하는 운동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이때, 과거의 왜곡된 냉전적 역사관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도를 ‘낙선․낙천 운동’으로 포장하려는 무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2일 보수 시민단체들은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 등 대표적인 반공인사들을 공천대상으로 선정했으며, 3.1절에는 서울에서 15만 여명이 참여하는 ‘친북좌익척결․부패추발3.1절 국민대회’를 열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자 등을 ‘친북좌익세력’으로 선정해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이들이 낙선운동을 벌이고 그 명단을 발표하는 것 자체는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적 시각이 기존 사회의 문제점을 개혁하고자 하는 ‘공익적 성격’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의 행동이 국민은 물론 대학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여기지는 않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낙선․낙천 운동이 갖고 있는 좋은 의도를 왜곡할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개혁적 성격의 낙선운동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바로 지금 대학생들은 예민한 비판의식을 곤두세워 젊은층의 고민과 개혁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표출해야 한다. 물론 그 시작은 모두가 스스로의 마음에 ‘낙선․낙천 인사 명단’을 하나씩 만들어 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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