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벗고 다녔나. 이번 가을에도 입을 옷이 없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옷은 사고 또 사도 끝이 없다. 1년이 지나면 쓰레기가 되는 옷들처럼 인간의 삶조차 쓰레기가 되는 현대성의 어두운 부분을 꼬집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들』이 번역ㆍ출간됐다.

저자는 먼저 쓰레기가 되는 삶들이 생기는 배경을 보여준다. 미켈란젤로는 “간단합니다. 먼저 대리석판 한개를 골라 불필요한 부분을 모두 깎아내면 됩니다”라는 말로 현대의 창조를 이끌게 될 계율을 선포했다. 대리석판의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 내리듯이 불필요한 ‘쓰레기의 분리와 파괴’가 현대 창조의 원리가 된 것이다.

저자는 ‘설계’가 쓰레기가 되는 삶들을 양산한고 이야기한다. 세계 지도자들은 인류의 설계도를 내놓는다. 현재 진행 중인 설계도는 자본주의. 세상을 설계도에 맞추다보면 미켈란젤로가 조각 작업을 하듯 불필요한 부분, 쓰레기들은 반드시 발생한다. 이 쓰레기들은 조각 쪼가리들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세상을 자본주의의 틀에 맞추는 것은 인간 결속의 형태를 설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계도에서 잘려나간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저자는 “국가의 보호기능은 고용이 불가능한 소수의 사람들과 병약자들만 포함할 정도로 차츰 줄어들고 있으며, 이러한 소수 집단마저 사회적 보호 문제가 아니라 법과 질서의 문제로 재분류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시장의 게임에 참여할 수 없는 무능력이 갈수록 범죄로 취급되는 것이다. 『위험사회』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울리히 벡도 “이제 개인들은 사회 시스템의 모순에 대해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강요받는다”고 이야기한다.

애초부터 설계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우리가 설정한 이상적인 미래에 도달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저자는 “완벽성은 영원한 미완의 시점에 놓여 있으며, 단지 한걸음 정도 앞에 있지만 정말로 도달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같은 이유로 설계도는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쓰레기들도 계속 축적된다. 그리고 세상은 또 변한다.

빠른 변화는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 현대인들은 남들에게 뒤처져 게임으로부터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한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시기를 살고 있는 대학생들은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인간들은 자신의 또 다른 본성으로 이 감정을 이겨낸다. 다행인지 신은 인간을 망각의 동물로 만들었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자신의 실수를 빨리 잊어버리는 것, 즉 ‘과거로부터의 이탈과 단절, 망각’이 사람들이 현대를 살아가게 해준다. 언제든 자신이 쓰레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현대 세계를 다소 다른 또 하나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초대장”이라고 소개한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고 친숙한, 그래서 오히려 잘 알기 어려운 세계. 저자의 독특한 통찰력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보자. 

 

쓰레기가 되는 삶들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정일준 옮김┃새물결┃256쪽┃1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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