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공리주의자들은 포로수용소를 ‘도덕다운 건축’으로, 감옥은 ‘도덕다운 기하학’으로 명명했다. 그들은 사회의 불건전한 것들이 ‘도덕다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장소에서 정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들이 지은 이름의 훌륭한 사회 정화 기능을 자화자찬했다. 건축사를 ‘석구조론’이나 ‘오더 양식’ 등과 같은 건축학 용어가 아닌 이같은 사회문화적 설명으로 풀어내면 어떨까?

건축학도가 아닌 독자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건축사 책이 나왔다. 임석재 교수(이화여대·건축학과)의 『역사 기술 인간』은 그의 서양건축사 시리즈의 마지막 책이다. 1권의 원시 고대부터 5권의 20세기에 이르는 이 시리즈는 모두 합쳐 200자 원고지로 약 1만3천4백여매 분량이다. 독자들을 주눅들게 하는 방대한 분량의 시리즈물이 계속 출판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물론 꾸준한 판매 부수 덕이었겠지만 이공계 책에 독자들이 매력을 느끼게 된 이유가 새롭다. 그 이유는 바로 책에 마치 한편의 역사소설처럼 생생한 건축사가 담겨 있기 때문. 저자는 “사회운동이 활발했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녀 자연스레 인문사회 서적을 많이 접했다”며 “유학을 결정하던 시절 건축사를 인문사회학으로 연구하고 글로 엮어내는 일이라면 이골나게 훈련을 했고, 자신 있었다”고 말했다.

『역사 기술 인간』은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서양건축사를 저자의 인문사회학적 지식이 가미된 그만의 시각으로 풀어낸다.

그는 판옵티콘을 ‘중앙집중형 건축구조’ 등의 건축학 용어들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판옵티콘에 대한 저자의 설명에는 이 건물이 처음 지어진 18세기의 사회문화적 배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세기,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다원화됐다. 기존 귀족 외에 상업을 통해 부를 획득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지배층으로 진입했고, 도시로 이주한 농민이 도시 노동자가 돼 피지배층으로 전락했다. 이와 동시에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시간은 점차 늘어났다. 때문에 지배층은 피지배층을 더 직접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다. 지배층은 그 방법으로 피지배층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 감옥을 도시 안에 짓기로 했다. 그때 벤담은 판옵티콘을 새로운 감옥의 건축구조로 제안했다. 판옵티콘은 감시자만 수감자를 관찰할 수 있게 만든 건축구조다. 이 건축물에서 수감자는 감시자가 실제 있건 없건 감시당한다고 생각해 스스로를 통제한다. 또 출입구에는 늑대와 여우를 쇠사슬로 묶고 채찍질을 가하는 그림이 있다. 지배층은 감금, 억압, 체벌의 이미지가 강화된 장식을 통해 죄수와 시민들에게 “자유로울 때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폭력을 쓰면 누구나 이런 감금의 공간에 갇힐 것이다”라는 암시를 심어준 것이다.
이밖에도 책은 19세기 독일의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헤겔의 역사 해석과 피히테의 의식 단계론을 통해 설명하고, 20세기 프랑스 ‘구조 합리주의’ 건축양식의 등장배경을 콩트의 실증주의와 뒤랑의 유형학을 이용해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낸다.

보통 서양건축사를 다룬 책은 한 권에 모든 내용을 담아낸다. 하지만 임 교수의 책은 통사(通史)방식으로 5권이나 된다. 저자는 그 이유를 “통사적 압축감과 속도감을 지키면서도 각론사가 가지는 깊이도 취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만만치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저자의 입담을 믿어도 좋다. 독자에게 이 책을 자신 있게 권한다.

역사 기술 인간 - 임석재 서양 건축사
임석재 지음┃북하우스┃824쪽┃4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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