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이 환경재앙을 만났을 때 (2) 환경과 여성주의(학)

피지배자이자 생산자라는
공통점 가진 자연과 여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발전’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군인들과 파괴된 환경을 치유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을 지닌 여주인공 나우시카가 대립한다. 이 둘의 대립은 현대사회의 ‘개발/보존’ 논쟁과 그 맥락을 같이하지만 이 영화는 환경보존의 주체로 여성을 부각시키는 점이 특징적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왜 환경 문제의 해결을 ‘여성’에게 맡겼을까?

생태여성주의에서는 그 답을 여성과 자연의 ‘동일성’에서 찾는다. 생명을 잉태하는 것은 여성의 역할 중 하나이기 때문에 여성은 생명의 생산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은 자연과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된다. 또 기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지배당하는 입장이었다. 자연 또한 ‘근대화’를 거치며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 다스려져야 하는 피지배자적인 입장이 됐다. 이처럼 생태여성주의는 자연과 여성의 유사성을 연구함으로써 환경 문제를 해결할 주인공이 자연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임을 강조한다.

경쟁을 통한 경제발전을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환경은 철저히 타자로만 인식됐다. 그 결과 환경보존 논리는 이윤과 이익의 극대화라는 논리에 가려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생태여성주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기술과 자본의 성장’보다 ‘생산과 재생산 간의 균형’을 중요시한다.

재정의되는 재생산 개념
균형 중시하는 생태여성주의

생태여성주의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재생산 개념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어느 시대나 인간은 생산물을 소비하지 않고 생명을 이어 나갈 수는 없었다. 또 인간은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자연물을 생산물로 변화시키는 활동을 끊임없이 해야한다. 자본주의와 생태여성주의는 이런 생산ㆍ재생산의 원동력을 서로 다른 지점에서 찾는다.

자본주의는 생산의 동기를 기업에 의한 이윤획득에서 찾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생산 과정은 화폐, 상품, 자본이 순환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화폐, 상품, 자본은 서로 유통되며 그 총량이 점차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현상은 환경을 필요 이상으로 훼손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반면 생태여성주의는 자연을 재생산 과정의 중심에 둔다. 즉 생태여성주의는 생산의 동기를 생명의 지속성에서 찾고 자본의 재생산이 아닌 생명의 재생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들에게 세대 간 ‘생물학적 재생산’, 그리고 세대 내 ‘일상생활 재생산’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생물학적 재생산’은 인간 종의 유지 및 자연 속 생물들이 생식을 통해 종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고 ‘일상생활 재생산’은 식량과 의복 등 인간의 모든 생활을 유지시켜주는 자원을 만드는 활동을 뜻한다. 생태여성주의는 생물학적 재생산과 일상생활 재생산 간 균형을 잡아 인간과 환경을 공존시키고자 한다. 『래디컬 에콜로지』의 저자 캐롤린 머천트 교수(미국 UC버클리ㆍ환경과학과)는 “생태여성주의는 재생산 개념을 인간 생명의 생물학적ㆍ사회적 재생산 유지 및 지구상 생명의 지속을 포함한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시각 뛰어넘는
여성만의 시각 제시

생태여성주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요소인 자연의 재생산을 지적했듯이 다른 연구 분야에서도 여성의 참여는 기존 시각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기존 과학연구가 남성 중심적임을 고발한 루스 허바드, ‘침팬지의 어머니’로 유명한 제인 구달, 처음으로 대중적인 환경운동을 촉발시킨 레이첼 카슨이 대표적 예다.

루스 허바드 교수(미국 하버드대ㆍ생물학과)는 “객관적이라고 생각되는 생물학이 사실은 남성중심주의에 물들어있다”고 주장하며 여성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다. 그는 『생명과학에 대한 여성학적 비판』에서 “여성과 남성의 키와 몸무게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남성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책에 따르면 아프리카 남부 지방 칼라하리 사막에 거주하는 ‘쿵’족은 월경과 출산에 관해서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이들이 먹는 음식은 복합 탄수화물과 식물성 단백질이 높은 반면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은 낮게 구성돼 있어 우리의 식생활과 대비된다. 이런 식생활은 여성들이 보통 18~19세에 초경을 경험하게 돼 여성들의 키가 남성과 비슷하다. 또 주로 여성들이 채집활동을 하기 때문에 근력도 남성과 비슷하다. 허바드 교수의 연구는 우리가 기존 남성과 여성에 대해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차이에 관한 관념을 깨뜨렸다. 그의 새로운 시각은 환경 문제에서도 여성의 시각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제인 구달은 27세였던 1960년부터 현재까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곰비 국립공원에서 야생 침팬지들과 함께 지내며 야생 영장류들의 생태를 연구해왔다. 그는 곰비 국립공원의 침팬지들을 관찰하며 그들도 인간처럼 이성이 있어 도구를 사용할 수 있고 침팬지 고아를 입양하는 등 감성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제인은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동물과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내용을 담은 환경봉사운동을 전 세계에 전파했다. 지난해 제인 구달은 이화여대에서 열린 ‘뿌리와 새싹’ 강연에서 “일상생활에서 작은 선택을 할 때도 도덕적 환경적 결과를 생각한다면 세상은 점점 나아질 것”이라며 환경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촉구했다.

1962년 출간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인류가 환경에 대해 새로이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침묵의 봄』은 과학을 기초로 삼은 기술이 인류 환경에 주는 부정적 영향을 여과없이 보여줘 대중에게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강력히 인식시킨 책이다. 책은 DDT와 같은 살충제가 인간을 포함한 생물들에게 각종 질병에서부터 신체적 기형까지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 미국사회에서 본격적인 환경오염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 논쟁은 1969년 국가환경정책법을 제정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됐고, 이후 전 세계적인 환경운동으로 확산돼 1992년 리우회담까지 개최토록 했다. 제인 구달과 레이첼 카슨이 전세계에 끼친 ‘환경에 대한 재인식’은 개발을 우위에 두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는 나오지 못할 생각일지도 모른다.

사실 생태여성주의는 환경과 여성학이 만난 학문영역이라기보다 생태주의와 여성주의가 만난 사회 운동 간의 결합에 가깝다. 제인구달과 레이첼 카슨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환경문제의 해결은 기술적인 개선뿐 아니라 의식의 개선도 수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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