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이념적 편가르기
여론 호도 기만적 정책 추진
민주주의 근간 흔드는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현재

법학부 석사과정
우리는 상식에 대해서는 비교적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는 민감히 반응한다. 하지만 이념 혹은 정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지겨워하기 십상이다. 어쩌면 이미 결론이 정해진 문제들이라 그럴지 모른다. 우리 사회의 몇몇 이슈에 대해 찬반을 따져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새로운 이슈가 나올 때마다 리트머스 시험지에 나온 색깔에 따라 입장을 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거기에 나온 결과가 아니라, 그 리트머스 시험지에 있다. 그 시험지는 변질되고 오래된 것이어서 폐기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변색된 빨강과 파랑의 결과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슈가 생길 때마다, 그것이 스포츠나 연예에 관한 것이 아닌 한, 대여섯개 정도의 신문사의 기사들을 비교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실체적 진실’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언론의 ‘클로킹’도 이에 한몫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재생산된 왜곡된 이념적 편가르기는 이제 상식의 영역을 침범해가고 있다.

국방부가 불온서적을 선정하고, 심지어는 역사교과서 개정안까지 제시했다. 민영화를 이름만 바꿔 선진화라고 하면서 반대여론을 비껴가려는 정부의 발상은 기만적이다. 폭력시위자를 핑계로 시위에 유모차를 끌고 나왔던 주부들이 경찰에 불려가 배후가 누구냐며 수사를 받고, 여당은 시위참가자에 대한 집단소송제를 도입해서 시민들에게 겁을 주려 한다. 그리고 이 모든 행태의 기저에는 우리 사회 곳곳에 물든 ‘좌파적’ 색깔을 탈색시켜야 ‘하나 된’ 대한민국으로 뭉쳐 잘 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이념전쟁의 탈을 쓰고 법치확립을 수단삼아 자신들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들을 음(音)소거 시키려는 시도는 군부독재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보수·진보를 불문하고, 그 어떤 정권이나 정치세력도 여론을 호도해가며 기만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공권력을 무기로 여론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특정 정책이 이념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이기 이전에, 그 과정의 절차적·방법적 정당성의 문제이자, 민주주의의 근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문제가 이념적 논쟁의 문제가 아닌 ‘상식’의 문제인 이유다.

법이 한 사회의 수준을 가늠케 해줄 수 있는 잣대가 된다면, 2008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선진화’하겠다고 추진하는 법들은 분명히 수치스럽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논할 것도 없이, 반대여론을 질식시켜서라도 ‘하나 된’ 대한민국으로 경제발전만은 이뤄내겠다는 섬뜩한 사고가, 바로 그 해법으로 건설경기 부양밖에 생각해낼 수 없는 서글픈 정책적 상상력의 한계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는 ‘하나 된’ 대한민국은 그렇게 변질된 리트머스 시험지를 들이대면서 겁을 주고, 교과서를 바꿔가면서 그 색깔을 탈색시키려한다고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공동체가 고통스러운 현대사를 겪으며 얻어낸 소중한 헌법적 가치와 제도들이 변색된 리트머스 시험지의 모르모트가 돼가고 있다. 1970,80년대를 겪어보지 못한 평범한 학생이 학내 신문에 글을 보내며, 관악경찰서 정보과 형사님이 내 이름을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보게 되는 연유다.

하륜
법학부 석사과정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