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역사학으로

도미니크 라카프라 지음┃육영수 옮김┃푸른 역사┃456쪽┃2만1천원

아직도 일본 식민통치 시기 우리가 겪은 고통스런 역사적 기억들은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에게 일본군 성노예 문제나 관동 대학살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일본 식민통치 시기의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할까. 치료법은 없는 것일까.

지난달 22일 도미니크 라카프라 석좌교수(미국 코넬대·인문학)의 『치유의 역사학으로』가 번역·출간됐다. 책은 저자가 최근 10년간 ‘윤리적 전환으로서의 역사학’을 주제로 집필한 논문들로 채워졌다. 역사 해석의 ‘윤리적 전환’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계속해서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책은 각 장마다 옮긴이의 압축적인 해제와 역주가 실려 있어 개별 논문의 이해를 도왔고 100페이지 분량의 해제는 라카프라의 역사 해석이론을 파악하기 쉽게끔 구성됐다.

라카프라 교수는 철학과 문학비평 분야에서 다루는 정신분석 이론을 역사 해석에 적용했다. 책을 번역한 육영수 교수(중앙대·역사학과)는 “그의 시도는 언어, 텍스트, 콘텍스트 간의 변증법적 관계 설정에 기반을 둔 기존 지성사에 방법론적인 확장을 이끌었고, 기존 역사해석을 재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기존 학계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적 무능력과 사회 경제적 위기, 나치 특유의 관료체제와 명령의 네트워크 등을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학살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반면 저자는 ‘희생주의’와 ‘속죄양 만들기’를 그 원인으로 꼽는다. 책에 따르면, 당시 나치는 유대인을 사회적 병균으로 묘사했다. 이 때문에 독일인은 자신의 민족과 문화를 파괴시키는 주범이 유대인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독일인이 수많은 유대인을 죄의식 없이 학살할 수 있었던 이유다. 또 그는 당대 독일인들이 유대인에게 가한 폭력을 사디스트·마조히스트적인 학대로 분석했다.

책은 “기존 역사해석은 단순히 역사적 아픔을 재등장시키는 과정이었다”며 “역사적 사건의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과거 기억의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분석 과정을 ‘성찰적 극복하기’로 정의한다. ‘성찰적 극복하기’를 통해 치유된 피해자의 기억은 더 이상 과거의 아픔에 머무르지 않는다. 피해자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계속해서 성찰함으로써 무의식에 내재하는 고통의 근원을 만나게 된다. 그 결과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른 아픈 기억을 피해자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한 ‘윤리적 전환으로서의 역사학’의 과정이다. 라카프라 교수는 역사가를 ‘기억의 심부름꾼’ 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역사가는 과거의 개인과 집단이 간직한 기억을 여과해 재구성한 기억을 후대에 전달하는 역할”이라며 “이는 기억을 과거 상흔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거리낌 없이 증언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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