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한국 문명연구사업단 심포지엄 ]‘문자의 기원과 문명’

사진: 대학신문 사진부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수메르의 쐐기문자. 고대문명이 발전된 곳에는 모두 문자가 있었다. 문명의 발전과 전승을 가능케 해준 문자는 지역에 따라 어떻게 생겨났고 각각 어떤 특성이 있을까?

지난 6일(월)부터 양일간 ‘문자의 기원과 문명’을 주제로 한 인문한국 문명연구사업단 심포지엄이 열렸다. 신양인문학술정보관에서 열린 이번 심포지엄에는 그리스, 근동지역, 중국 등에서 시작된 문자와 해당 지역 문명의 관계에 대해 데니스 슈만트-베세라트 교수(미국 텍사스주립대·미술과/중동학과)를 비롯한 외국 저명학자 10여명이 참여해 국내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문자의 발명 이후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서도 정보를 전달하려  했다.”

데니스 슈만트-베세라트 교수는 “문자시대를 맞이한 사람들은 그림에서도 다양한 이미지를 사용해 복잡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문자 발명 이전 시기에는 사람이 등장하는 그림도 드물었고, 사람을 그릴 때도 그림이 단순해 등장인물의 사회적 계급이나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또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도 전혀 묘사되지 않았다. 반면 문자가 쓰인 이후의 그림은 등장하는 인물의 성과 사회적 계급 등이 표현돼 있다. 베세라트 교수는 “기원전 3세기 중반 페르시아인들은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며 “이 시기 페르시아 항아리의 그림은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 시기의 그것과 묘사의 정확도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기원전 3세기 중반 페르시아 항아리의 그림에는 2륜 마차를 모는 전사, 호위병, 전쟁에 나서는 그들을 배웅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 그림에는 등장인물의 성과 사회적 계급을 나타내주는 의상과 장식도구 등이 표현돼 있다. 또 주인공인 전사가 한가운데 있고, 그 주위에 호위병과 여성들이 둘러서 있다. 반면 문자를 쓰기 이전의 그림에는 중요한 인물이 위쪽에 그려졌고 그렇지 않은 인물은 아래쪽에 그려졌을 뿐이다. 베세라트 교수는 “문자의 속성은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라며 “문자 사용 이후 문자의 이러한 ‘정보교환 패러다임’이 예술과 같은 다른 분야에도 빠르게 퍼져나갔다”고 말했다.

“상형의 가면 아래 숨겨진 중국 문자의 표음적인 특성과 의미론적인 맥락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염정삼 연구원(인문학연구원)은 “중국의 문자 체계는 초기 단계부터 상형성을 기반으로 한 표의성과 표음성 사이의 긴장 속에 발전해 왔다”고 주장했다. 실제 우리는 한글이나 영어가 표음문자라는 한 가지 특성만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에 익숙해 한자도 상형문자 혹은 표의문자라고 단정지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염 연구원은 來(래)와 (추)를 예로 들며 “상형문자일지라도 반드시 표의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고 말했다. 來는 원래 보리의 형상을 딴 문자지만 ‘오다’의 의미를 지니고, 隹는 새를 형상화 했지만 접속사다. 또 그는 “같은 성부(聲付)를 갖는 형성(形聲)문자라도 실제 발음이 다를 수 있다”며 중국 문자의 표음성에 주목하는 관점에도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柏, 拍 등의 한자들은 모두 白의 음을 빌어왔지만 서로 다르게 발음된다. 염 연구원은 “중국 문자는 표음적인 특성과 의미론적인 맥락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이런 특성이 중국 문자의 생명력, 창조력, 적응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알파벳은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를 기록하기 위해 발명됐다.”

배리 파웰 교수(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고전학과)는 “지중해에 전해진 호메로스의 시는 자음만을 사용하는 초기 페니키아 문자로 기록됐다”며 “그러나 페니키아인들은 호메로스의 시가 지닌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 모음을 추가했고 이것이 그리스 알파벳의 초기형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연구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는 어떻게 문자로 남겨졌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기원전 8세기 그리스 귀족들은 시를 즐겼는데 당시 구성도 뛰어나고 풍자적인 호메로스의 시는 귀족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에게도 널리 퍼졌다. 그 결과 당시 그리스에서 무역업을 하던 페니키아인에게까지 호메로스의 시가 전해진 것이다. 호메로스가 활동한 시기는 기원전 8세기지만, 그의 시가 기원후 8세기에 발명됐다고 추정되는 그리스 알파벳으로 쓰여진 이유를 그리스의 사회적 특성에서 찾은 것이다.

인문학연구원장 김남두 교수(철학과)는 “웹 2.0의 새로운 등장 등 현대 사회의 매체는 급변하고 있다”며 “초기 매체인 문자의 기원과 그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매체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떻게 영향력을 끼칠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기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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