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세기, 이성의 문학 - 프랑스 계몽사상과 문학
이동렬 지음┃문학과지성사┃343쪽┃1만8천원 

문학연구에서 어떤 시기를 대상으로 선택하는 일은 정치적인 행위다. 프랑스 계몽주의의 경우가 그렇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죽은 해인 1715년을 그 시발점으로, 절대왕정 및 구체제 자체를 붕괴시킨 ‘대혁명’이 일어난 1789년을 그 종착점으로 보는 시대구분 자체가 그 정치성을 반영한다. 프랑스에서도 2차 대전 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18세기 연구의 일반적 흐름에도 역시 이 정치성은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 이 새로운 연구를 주도한 선구자들, 그리고 그것을 계승 발전시킨 제자들은 대체로 좌파, 또는 진보적 지식인들이었다. 사회변혁의 전형으로 간주되는 프랑스 대혁명의 지적·사상적·문화적 기원을 찾는 일이 이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일이었을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국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80년대 초반의 암울한 정치 상황과 변혁의 꿈은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졌고,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사르트르가 참여문학의 이상적 실현을 보았던 프랑스 계몽주의로 눈을 돌렸다.

1990년대에 들어, 소위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사정은 많이 변했다. 프랑스에서나 우리 사회에서나 계몽주의의 인기는 한풀 꺾인 듯이 보인다. 문학을 통한 사회 변혁을 꿈꾸는 일을 유치한 망상으로 치부하는 지적 냉소주의가 적지 않다. 보다 진지한 쪽에서도, 이동렬 교수(불어불문학과)가 지적하듯이, 현대 문명의 여러 병폐를 “계몽적 이성의 탓으로 돌리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계몽주의에 대한 불신에 가장 큰 책임을 가진 사람은 계몽주의 연구자 자신들일 것이다. 프랑스에서 18세기 연구의 좌편향을 지적하는 비판은, 불행하게도, 상당 부분 근거가 있다. 이 연구의 발전에 좌파 지식인이 많은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기계론적 유물론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으로의 발전이라는 교조주의적 도식을 합리화하고, 대혁명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려는 회고적 관점에 빠져 그 틀에 맞지 않는 현상들을 도외시하고, 특히 문학 연구에서는 사상적·정치적 의의를 찾느라 문학 텍스트의 고유한 결을 살피지 못한 경향이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이성에 대한, 특히 계몽적 이성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시대에 이동렬 교수의 『빛의 세기, 이성의 문학 - 프랑스 계몽사상과 문학』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불신에 맞서서 저자는 “현대세계가 자아내는 우울한 상념은 그 합리성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비합리성에 기인”한 것이며, “계몽주의 운동이 인간의 행복을 저해하는 불합리에 대한 투쟁이었고 이성의 이름으로 진행된 비이성에 대한 항의였다면,” 이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절실히 필요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런데 이 진단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매우 꼼꼼한 텍스트 분석으로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다. 몽테스키외, 볼테르, 디드로, 루소라는 프랑스의 ‘빛의 세기’를 대표하는 네 사람의 생애, 문학, 사상을 논한 이 책은 ‘이성의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첫째로는 이 작가들의 문학 텍스트들이 감성보다는 주로 이성에 호소하는 특징을 갖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텍스트를 읽는 주체가 성숙한 이성의 시각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복잡한 움직임과 텍스트의 오묘한 울림을 동시에, 정치(精緻)하게 잡아내는 일이야말로 성숙한 이성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성은 문학 연구의 정치성(精緻性)만이 그 진정한 정치성(政治性)을 보장해주는 길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불어불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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