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선유학인가

한형조 지음┃문학동네┃398쪽┃2만원

트로이 전쟁 후 아이네이아스는 지금의 이탈리아에 정착해 로마를 세운다. 서로마가 476년 멸망하면서 로마 문화는 사실상 명맥이 끊기게 된다. 그리스·로마 문화는 14세기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나서야 다시 주목을 받는다. 무려 900년이 지났지만 그리스·로마 문화는 그 발상지에서 다시 꽃을 피운 셈이다. 이후 유럽은 르네상스를 통해 중세에서 근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지난 2일(목) 출간된 한형조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의 『왜 조선유학인가』는 한국판 르네상스를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문장 필수성분이 생략된 채 의문형 문장구조로 이뤄진 제목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해 여러 질문을 던지게끔 한다. 하지만 책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왜 조선유학인가’이다. 책은 우리 기억에서 오래도록 잊혔던 조선유학을 현재로 다시 불러온다.

저자는 “그동안 동양철학은 대학이나 사회에서 무시됐고, 미아리의 사주관상 비슷한 것으로 여겨져왔다”고 말한다. 한국은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조선유학을 외면했다. 저자는 이를 “제국 열강의 각축기 속에서 조선유학은 자주와 독립을 지키는 데 실패했고, 연이은 근대화 과정에서도 장애물로 판단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저자는 조선유학이 아직도 경제적, 물질적 측면에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이 전통론자들에게는 언짢을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맹자의 ‘책을 맹신하는 것은 책이 없는 것만 못하다(盡信書則不如無書)’는 문구를 인용하며 “학문은 현실을 통해 검증될 때 비로소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고 반박한다. 실제 정보통신회사인 주식회사 팬택은 국제적 비즈니스를 할 때 한국에서 ‘학문’이 아닌 ‘문화’로 자리 잡은 조선유학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연구기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저자는 정신적 측면에서도 조선유학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21세기 ‘지금’, 만연한 소외와 의미망각의 ‘상황’ 속에서 조선유학으로부터 조언과 지혜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근대화 과정에 생겨난 부산물을 조선유학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근대화를 넘어선 새로운 한국의 상을 모색하고 있다.

이 책과 동시 출간된 저자의 『조선유학의 거장들』은 조선유학의 사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책은 ‘위로부터의 개혁론’편에서 다산 정약용의 사상을 짚어보고, ‘지구 공동체를 향한 꿈’편에서는 혜강 최한기의 기학을 검토한다.

저자는 “식민의 상처는 아물었고 근대의 욕망은 성취됐다. 그런 후 우리는 어떤 간절함으로, 무슨 꿈을 담아, 조선유학의 이름을 부를 것인가”라고 묻는다. 조선유학의 이름을 어떤 간절함으로, 무슨 꿈을 담아 부를지는 독자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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