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외국어 학과 강의조차
영어 위주로 진행되는 현실
다양한 언어 공존해야
세상 바라보는 시각도 넓어져

서어서문학과 석사과정
인문대 학부제를 실시한 이후 예상대로 어문학 계열에서는 주로 영어영문학과로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고정매출’을 올리는 국어국문학과나 ‘급성장’을 보이는 중어중문학과를 제외한다면 기타 어문 계열의 학생 수는 학과제를 실시할 때와 비교해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전공예약제를 시행하는 등 보완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학부제의 틀 안에서는 영어만을 ‘제1외국어’로 모시는 한국 사회의 흐름을 막을 수 없을 듯 보인다. 인기 없는 학과는 ‘철거’되는 판이니 미리 보따리라도 싸놓아야 할까.

이러한 현상의 문제는 제2외국어 학과들이 축소되고 사라지면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언어와 문학 그리고 세계의 폭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점이다. 최근에 번역된 앤드류 달비의 『언어의 종말』은 지구상에 존재하던 다양한 언어가 영어를 중심으로 한 소수의 국제어 확산으로 인해 소멸하는 전지구적인 현실을 진단하고 이는 곧 다양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경고한다. 즉, 하나의 언어가 사라지면 현실을 바라보는 틀 자체가 하나 없어지는 것이고 이런 경향이 지속되어 영어만 남게 되면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틀은 단 하나가 되는 셈이다.

영어가 ‘바벨의 언어’가 될 수도 있다는 진단은 지구의 멸망만큼이나 아득한 미래의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문학을 전공하는 내 입장에서는 대학 내의 상황을 보며 이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한 대학에서는 단지 영어로 강의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영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문학과에 영문학 전공자를 채용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분이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읽을 문학 작품도 원문이 아닌 영어로 번역된 텍스트일 것이다. 이는 서울대 인문대 수업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 현실이다. 학부 수업에서는 단지 학생들이 더 읽기 쉽다는 이유만으로 영어로 번역된 다른 외국문학 작품을 수업 교재로 사용하기도 하고 해당 어문학과가 없는 외국문학을 다루는 수업의 경우 영문학 전공자가 영어로 번역된 텍스트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대학원도 마찬가지다. 대학원생들은 자신의 전공언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로 된 작품이나 이론서를 보게 될 경우 익숙하고 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십중팔구 영역본을 읽는다.

어떤 학문을 전공하더라도 영어가 공통의 학문 언어요 공통의 번역어가 되어 가는 전지구적인 현실을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어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틀 중 하나일 뿐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사실상 우리가 지니고 있는 틀도 얼마 되지 않는다. 희랍 및 라틴어문학을 다루는 서양고전학전공은 대학원 협동과정에야 있을 뿐이고 아랍어문학과나 이탈리아어문학과는 있지도 않다. 그나마 있는 틀마저 없어진다면 우리 인문학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분명 한정될 것이다. 나는 외국어를 배우고 나서 텍스트를 읽게 되었을 때의 두근거림을 잊지 못한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와 만난다는 기대와 희열이었다. 내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세형
서어서문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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