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규장각 한국학 국제학술대회

사진: 성재민 기자
사진: 성재민 기자
지난 2006년 미국 내 한국학의 대부 제임스 팔레 교수(1934~2006)가 별세했다. 그는 흥선대원군과 반계 유형원 등에 대한 인물연구에 심취했고 조선시대 분석과 함께 1970년대 한국의 인권탄압과 남북대립 등 정치현실에 대해서도 이해가 깊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팔레 교수의 연구를 지원하고 싶다”며 100만 달러의 한국학 기금을 마련했지만 그는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객관적 연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를 거절하기도 했다. 제임스 팔레 교수의 연구결과는 존 던컨 교수(미국 UCLA·동아시아학과)와 카터 에커트 교수(미국 하버드대·한국학연구소) 등 후학들이 한국학을 연구하는 토대가 됐고 여전히 국내외에서 한국학의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지난 16일(목)부터 이틀간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이념과 제도의 교류: 세계 속의 한국, 한국 속의 세계’를 주제로 ‘제1회 규장각 한국학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미국, 독일, 한국 등 국내외의 한국학 연구자들이 만나 다양한 주제에 대해 활발히 논의했다.

◇제임스 팔레의 연구,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나?=논의의 중심은 제임스 팔레 교수의 연구였다. ‘제임스 팔레: 그의 동조자와 비판자’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선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영국 런던대·한국학연구센터)는 팔레 교수의 연구업적을 소개하고 이에 대해 평가했다. 제임스 팔레 교수는 『반계수록』과 중국의 문헌 등을 검토한 후, 유형원을 ‘새로운 학문의 선구자’가 아니라 중국에 매몰돼 도덕적 사회규범을 강조한 인물로 분석했다. 유형원을 양반체제와 엄격한 관료제로 돌아가자는 견해를 갖고 있는 인물로 파악한 것이다. 도이힐러 교수는 이에 동조하며 “유형원은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려 했다기보다는 완벽한 유교사회로의 회귀를 바랐던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토론자로 나선 정호훈 연구교수(연세대·국학연구원)는 “유형원의 관심사는 사회조직의 변화가 아니라 당대의 폐단인 토지제도의 개혁”이라며 “팔레 교수가 유형원의 문제의식 자체를 잘못 설정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정 교수는 “유형원이 중국의 이상적인 제도를 공부한 것은 맞지만 조선의 역사를 무시한 채 중국의 역사와 문화 자체에 심취한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또 조선시대 노비의 인구비율이 30%가 넘었다는 점을 근거로 조선을 노예제 사회로 규정한 팔레 교수의  주장에 대한 반박도 나왔다. 이영훈 교수(경제학부)는 “그는 지주와 소작농 관계에서 소작료를 지불하는 계층을 노비로 봤고 그것이 당시 조선의 지배적인 생산양식이었기 때문에 조선을 노예제사회로 본 것”이라며 “당시의 소작농은 노예와 구분되는 농노의 개념이고 이는 서구의 노예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서구의 노예는 ‘사회적으로 죽은 존재’로 여겨지는 데 반해 조선의 노비는 차별을 받기는 했지만 상민 계층과 혼인하고 함께 노동하는 등 어느 정도 자유로운 생활을 보장받았다”며 “조선에서 사회적으로 죽은 노예의 이미지를 찾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제임스 팔레 교수는 조선후기에 난전이나 보부상과 같은 ‘자본주의의 맹아’가 존재했다고 보는 한국 역사학계에 반발해 “한국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맹아적 요소가 자본주의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극히 작았다”며 “이는 자본주의자들이 역사를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한국 역사학계는 ‘내재적 발전론’을 주장하며 그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팔레 교수에 대한 논의가 그의 사후에도 이어지는 것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학을 연구할 때 그의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도날드 베이커 교수(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한국학과)는 “북미지역에서 팔레 교수의 관점을 고려하지 않고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사회사와 유학정치 연구는 수용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또 이영훈 교수는 “팔레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그의 문제제기 자체는 매우 높게 평가한다”며 “한국 역사학계가 자기중심적인 연구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公)개념에 기반을 둔 한국의 근대성=현재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진행됐다. 박태균 교수(국제대학원)는 ‘공(公)’개념에 주목해 “한국의 근대성을 파악할 때 사적 소유의 개념에서만 출발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공개념의 연속성에 대해서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견해에 따르면 균전제를 주장했던 유형원 등 중농주의 실학자들 역시 공개념을 기반으로 토지제도의 개혁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근대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농주의 실학자들을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로 치부할 수 없게 된다. 박 교수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공개념은 임시정부 정치강령과 이후의 정치노선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방 이후 정치세력들은 헌법의 경제조항에 개인의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는 조항을 포함시키는 등 공개념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모습은 1970년대의 경제개발계획과 현재까지도 존재하는 공기업으로 이어졌다.

이밖에도 김정주 교수(경상대·사회과학연구소)는 한국의 현대 경제사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시대의 국가물신주의가 자유화 시기의 시장물신주의로 이어졌고 이는 성장에 대한 ‘물신주의’의 만연을 야기했다”고 분석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김영식 원장은 “한국학의 연구가 국내에서만 진행된다면 좁은 시야에 갇힐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화 일변도로 진행돼 학문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결과가 일어나서도 안된다”며 “이번 국제 심포지엄의 학문적 교류가 한국학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체성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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