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제10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

지구환경공학부

람사르총회에 대한 참관기를 청탁받으면서 이런 특이한 회의에까지 학생들 관심이 미치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람사르라는 이름이 낯설기는 하나 이는 회의를 처음 개최했던 도시 이름에 불과하다. 람사르총회는 ‘물새서식처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국제협약’을 논의하는 정부대표 회의다. 160여개국, 2천여명이 모인 이번 창원회의 역시 여타 정부간 회의와 비슷하게 협약이행 결과를 보고하고 협약내용을 개선하는 회의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매체들은 람사총회를 자세히 보도하고 또 『대학신문』까지 관심을 갖는 것일까? 아마도 ‘습지’ 때문이라 여겨진다. 습지가 무엇이길래 세계 160여개국의 고위 공무원들이 모여 회의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라고 할 것이다.

습지를 보호하고자 세계 국가대표들이 모이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 인식이 진일보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 방지를 다루는 기후변화협약, 생물과 생태계의 보전을 다루는 생물종다양성협약 등이 모두 인간을 넘어서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루는 협약들이다. 단, 습지협약이 특이한 것은 황무지, 쓸모없는 땅, 그래서 없애버리고 개간해야 하는 땅으로 생각했던 자연을 보전하려는 협약이란 점이다. 이제는 쓸모없는 자연까지도 국제적으로 협약을 맺어 보호한다는 점이 언론매체에는 특별하게 비쳤던 것이 아닐까 한다. 창원의 람사르총회는 바로 쓸모없는 자연도 귀중하다는 인식을 우리에게 심어 준 회의이다.

우리나라는 이들 쓸모없는 땅을 잘 보호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습지라고 하면 늪지, 소택지를 떠올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서해안 갯벌이 전형적인 습지다. 그러나 갯벌은 간척의 대상일 뿐이었다. 시화호, 새만금 등의 대규모 간척사업은 역사적으로도 또 세계적으로도 드문, 대규모 습지파괴 사업이었다. 네덜란드와 독일, 덴마크 3개국은 우리나라처럼 갯벌을 전형적인 습지로 가지고 있으나 우리와는 달리 1987년 맺은 3개국 협약에 따라 갯벌을 잘 보호해 마침내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습지를 잘 보전하고 있는 국가가 아니면서 람사르총회를 유치하는 것은, 즉 갯벌을 파괴하는 국가가 람사르총회를 유치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창원회의에서 총회 개최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이 모순을 나름대로 풀어낸 학술회의와 ‘NGO’s 대회’가 있어 이를 소개한다.

동아시아 연안습지 보전 국제 심포지엄이 그 모순을 풀어낸 중요한 학술회의 중 하나였다. ‘갯벌포럼’이라는 국내단체와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 유엔개발계획(UNDP) 황해생태계연구단 등이 합심하여 준비한 이 국제심포지엄에서는 갯벌생태계의 중요성, 갯벌과 철새, 갯벌과 인간문화, 갯벌보호 정책의 국가간, 지역간 차이를 그 역사적 배경과 함께 극명하게 드러내었고 또 미래를 전망하였다.

이 심포지엄을 특별히 소개하는 이유는 심포지엄 공동 결론을 정부 간 회의에 상정하여 문서화했다는 데 있다. 앞으로 더 이상 대규모 매립을 승인하지 않고 또 갯벌보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정책을 펼치며 와덴해(海)에 근접한 국가 등과 긴밀히 협력한다는 내용의 심포지엄 결론을 이끌어 내고 이를 결정문은 물론 부속서에도 삽입한 것이다. 심포지엄과 토론, 공청회 등을 거치며 문건을 만들고 이를 국제회의에서 제안하고 국가대표들이 논의하여 받아들이는 과정을 참가자들이 경험한 것도 중요하지만 ‘학술토론’의 결과를 국제간 협약에 직접 반영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대규모 간척이 다시 논의되면 이 문건에 기초해서 대규모 간척 반대의 논리를 전개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논거점을 확보한 셈이다.

람사르총회 사전행사로 3일간 진행된 ‘NGO’s 대회’는 습지보전과 갯벌매립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결론으로 내놓았다. 람사르습지로 등록되어 있는 순천만 갯벌 인근에서 진행된 대회는 아시아 지역에서의 내륙습지와 연안습지 모두를 언급하면서 그 보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 역시 문건으로 정리하여 회의에 상정하고 이를 국가간 회의에서 수용하였으므로 대회의 성과가 컸음이 분명하다.

람사르총회는 개발을 넘어서서 어떻게 보전으로 나아가겠는가에 대한 토론장이라고 하겠다. 1987년의 총회에서 합의한 ‘현명한 이용’의 개념을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을 서로 토론하는 자리인 것이다. 현명한 이용을 ‘생태계의 속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인간의 이익을 위해 지속가능하게 이용’으로 정의했지만 현명한 이용의 정도를 실제로 선으로 긋는 것은 쉽지 않다. 선진국들은 ‘과학에 기초한 결정’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은 사회적, 정치적 조건 속에서 그 선이 그어지므로 보전과 이용의 정도를 조화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쓸모없는 땅으로 여기던 습지를 보호하겠다고 국제적으로 모인 정부대표단, 국제단체, 시민단체, 전문가들의 진지함이 진정 스며있던 총회였다.

고철환 교수
지구환경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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