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안하영 기자
최근 미국 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전 세계 조선업계의 수주량이 줄어드는 등 ‘국내 조선업계도 위험한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이 각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실제 올해 1~9월 세계 조선업계의 총 수주량은 3,900만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수)로 전년 대비 34.5% 감소했다. 세계 조선업계 전반의 하락설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량도 1,600만CGT로 전년 대비 36% 감소했다. 이밖에도 중국 조선업계의 추격이 한국 조선업계 위기설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올해 9월 한국의 수주잔량은 6,990만CGT로 전년과 비슷하지만, 중국은 6,280만CGT로 전년 대비 26% 증가했다.

조선업계의 불황에 대한 우려가 조선업계 외부에서도 제기되는 이유는  조선업계가 한국 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선업은 전체 수출액 중 7.5%를 차지했고 무역수지에서 246억 달러 흑자를 기록해 자동차 324억 달러, 무선통신 264억 달러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제조 국산화율 또한 91%에 달해 반도체 18%, LCD 40%를 훨씬 웃돌아 국내 산업계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 조선업의 위상을 단순히 수치로 계산하기보다 기술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신종계 교수(조선해양공학과)는 “단순히 건조량이나 수주량으로 한국 조선업의 위기를 논하는 것은 무리”라며 “고부가가치 선박의 경우 중국과 5~10년 정도의 기술격차가 있어 현재로선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1980년대 조선업을 주도한 일본은 저렴한 임금을 바탕으로 한 가격 경쟁력과 우수한 품질의 선박 제조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후 한국 조선업은 일본을 뛰어 넘고 10년째 조선업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윤락 교수(울산대·조선해양공학과)는 한국이 일본을 추월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지속적인 조선 인력 양성’을 꼽았다. 실제로 일본은 조선업이 하락국면에 접어든 1990년대에 조선관련 학과 및 연구소에 지원을 줄이기 시작한 반면 한국은 조선 관련 인력을 꾸준히 키웠다. 최 교수는 “원천기술도 중요하지만 조선업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학습 효과”라며 “지속적 건조와 꾸준한 전문 인력 수급으로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제조 기술력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은 현재 선박의 블록들을 2~3개로 합친 거대 블록을 만들어 용접 시간을 줄인 ‘초대형 블록공법’이나 지상에서 건조를 마치고 바다에 배를 띄우는 ‘텐덤 침수공법’ 등의 기술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새로운 제조 기술의 적용은 제작비와 건조 기간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켰다. 이밖에도 한국은 두 가지 이상의 기능을 지닌 선박의 건조와 같이 높은 제조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에서 특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조선업계에서 이미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한국은 최근 해양 플랜트 등 새로운 해양 산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해양 플랜트는 해상에서 천연가스나 원유를 뽑아내 정유하는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 설비)와 드릴십 등을 일컫는다. 산업연구원 홍성인 연구위원은 “해양 플랜트는 조선 분야에 비해 부가가치도 더 크다”며 “한국 조선업의 새로운 발전 동력으로 해양 플랜트가 주목받고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삼성중공업에서 개발한 LNG FPSO선은 세계 최초로 수주돼 해당 선박 분야를 선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LNG FPSO선은 선박에 해양 플랜트를 얹은 것으로 조선업과 해양 산업의 만남이다. LNG FPSO선은 선박처럼 이동하며 유전에서 원유를 추출해 정제할 수 있다. 기존 해양 플랜트는 건설비용만 2조원에 달해 대형 가스전에만 지어졌다. 하지만 LNG FPSO선은 해상을 움직이며 원유나 천연가스를 중·소형 유전에서도 추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매장량 1억톤 미만의 중·소형 유전은 전 세계적으로 2,400여 곳이나 있는 것으로 추정돼 LNG FPSO선의 수요는 앞으로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윤락 교수는 “이미 현대·삼성·대우 등 조선 3사가 모여 ‘해양 플랜트 연구회’ 등을 만들어 해양 플랜트를 연구한다”며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영역 확대로 한국 조선업은 꾸준히 선두의 위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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